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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ㆍ2심서 무죄받은 필로폰 밀수범, 대법서 돌연 유죄 왜?
뉴스종합| 2016-02-29 06:01
- 檢 체포ㆍ증거압수 절차 적법여부 놓고 판단 뒤집어져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중국에서 다량의 필로폰을 밀수입해 국내로 들여오다 걸린 40대 남성이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면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및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모(48)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원심은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이씨를 체포하고 증거물을 압수했다’며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1년 검찰이 마약 혐의로 수사를 벌이자 중국으로 도피한 이씨는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고 중국에서 숨어 살았다. 그러다 2014년 아예 신분을 세탁할 목적으로 자신과 닮은 사람의 여권을 구하러 국내에 밀입국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대구의 마약조직으로부터 ‘중국에서 필로폰 6.1㎏을 몰래 들여와주면 9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오면서 이씨는 2014년 6월 밀입국과 동시에 마약 밀수입을 감행했다. 이틀 간의 항해 끝에 이씨가 탄 바지선이 경남 거제 고현항에 가까워지면서 범행은 거의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항구에는 이미 3일전 첩보를 입수한 검찰 수사관들이 이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지선에 들이닥친 수사관들은 창고에 숨어있던 이씨를 발견해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후 다른 장소를 수색하던 수사관이 필로폰 뭉치를 발견해 범행 증거로 압수했다.

원심은 수사기관이 이씨를 먼저 체포하고 난 뒤 필로폰을 압수한 순서에 주목해 체포 및 증거압수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필로폰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데다 이씨가 필로폰을 밀수한다는 첩보만으로는 범죄의 명백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수사기관의 현행범 체포는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즉, 증거를 먼저 확보한 뒤 이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아예 사전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행범 체포와 필로폰 발견 사이에 시차가 크게 나지 않으므로 사실상 두 행위가 동시에 이뤄진 것으로 인정했다. 또 이씨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서 필로폰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이씨가 필로폰 밀수범죄의 범인임이 명백했고, 이에 따라 이뤄진 현행범 체포 역시 적법하다고 봤다.

증거 압수절차의 위법성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하급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현행범 체포현장에서 압수한 물건을 수사기관이 계속 보관하려면 사후에라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데 검찰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수사관이 필로폰을 확보한 뒤 이씨에게 임의제출 의사를 묻고 제출받았기 때문에 영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의자가 스스로 물건 위치를 알려줘 임의제출했다면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지만 수사관이 먼저 증거를 손에 넣은 경우엔 피의자에게 더 이상 임의제출을 물을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즉, 검찰 주장대로 ‘선 압수 후 임의제출’을 허용하면 수사기관의 강제적인 압수가 우려되기 때문에 이미 압수한 물건에 대해선 반드시 사후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사관이 필로폰 압수 전 이씨에게 임의제출에 대해 고지했고, 이씨도 여러 차례 동종 범행으로 형사처벌받은 전력이 있어 필로폰을 임의제출할 경우 압수돼 돌려받지 못하는 사정 등을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는 필로폰 소지자로서 이를 스스로 제출했기 때문에 영장없이 압수도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joze@heraldcorp.com

(사진=헤럴드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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