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알파고 초절정 고수의 포스 느껴졌다”
뉴스종합| 2016-03-10 11:31
이세돌아바타가 본 대국기

이창호9단과 저를 섞어놓은 듯
창의력·모험심까지 갖춰

첫판 져서 죄송 사실 나도 충격
기회는 있을것…긴장감 재무장



놀라셨나요? 사실 저도 충격입니다. 하지만 첫판인데요 뭘….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관련기사 4·5면

그래도 지구인 대표로 출전했는데, 첫판(5번기 중 1국)을 져서 죄송합니다.

맨처음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일때 쉽게 생각했습니다. ‘기계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라는 생각도 사실 있었습니다. 바둑에선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게 위험한 일입니다. 최정상의 고수들 사이에선 더욱 그렇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크게 위협이 될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5:0 승리를 장담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런데 아닙니다. 어제(9일) 대국 후 제가 말씀드린 것 처럼 이제 확률이 5:5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2국~5국에선 제 승률이 반반이라는 뜻입니다. 죽어라고 바둑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맨처음 제가 한 수를 뒀을때 알파고가 1분30초 뒤 뒀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초절정 프로기사의 착점 느낌이 확 밀려오더라구요.

알파고는 뚜벅뚜벅 걸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얕잡아 봤기에 그런 측면도 있지만, 알파고의 균형감각과 때론 승부를 걸어올때의 타이밍은 최정상 고수와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황한 것도 사실입니다.

알파고가 처음 몇수 실수를 했을때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파고가 102번째 수를 뒀을때 정말 당황했습니다. 알파고의 최고 승부수였죠.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프로기사 중 102번째 수를 감행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확신이 없으면 절대로 못들어오는 수죠. 알파고가 인간 못잖은 도전의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적(敵)이지만 멋진 놈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인공지능 대표주자 알파고가 이렇듯 위력적이니, 폭발적으로 퍼질 인공지능 산업시대에 대해 미리 경험했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생기더군요.

알파고는 세간의 예측대로 전성기때의 이창호 9단과 닮았습니다. 전혀 무리를 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것을 볼때는 약간 저도 닮았다고 봅니다. 이창호 9단과 저를 버무렸다고 할까요. 아무튼 알파고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창의력도 있고 모험심도 있다는 게 1국을 해본 제 최종판단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대국이 쉽지 않음이 감지됩니다.

그래도 전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생각보다 알파고가 막강하지만, 반전을 꾀하렵니다. 5번기 대국 중 첫판을 진 것은 숱하게 많습니다. 알파고가 철저한 계산능력을 갖춘데다 창의력도 있음을 발견한 이상 세계 최고수로 인정하고,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슈미트 구글 회장은 “누가 이기든 인류의 승리”라고 하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아직 바둑의 영역은 인간의 것으로 고수하고 싶습니다. 이 대결을 하기 전에 “인류를 대신해 바둑을 지켜달라”고 했던 많은 지인들의 격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알파고를 세계 최정상 고수로 인정한 이상, 저도 고도의 팽팽한 긴장감을 무장하려 합니다. 중국의 구리, 커제 9단과 바둑을 둘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어쩌면 고독한 게임이지만 5국까지 최선을 다하렵니다.

알파고에 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을 떨치고 제 길을 개척하는 것.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죽을 각오로 다시 돌을 잡겠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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