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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패ㆍ자충수ㆍ초읽기…인생 담아낸 바둑용어가 뜬다
뉴스종합| 2016-03-15 10:27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한 판에 사실상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바둑은 흔히 ‘인생의 축소판’ 이라 불린다. 때문에 바둑 용어들은 일상생활과 미디어를 통해 사용돼왔다. “호구 잡혔다” 등으로 쓰이는 ‘호구(虎口)’, 모든 일의 기본기를 가리키는 ‘정석(定石)’ 등 바둑을 잘 모르면 바둑 용어인지 알기 어려울만큼 널리 쓰이는 단어들이 많다.

특히 최근 ‘미생’과 ‘응답하라1988’ 등 바둑이 등장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이런 바둑 용어도 덩달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초반 포석(布石)의 중요성=바둑돌의 초반 배치 전략을 뜻한다. 당장 집을 짓는 실리(實利)를 중시할지 중후반을 도모하는 세력 바둑을 펼칠지 포석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포석에서부터 불리해지면 전체 바둑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사전(事前) 포석 작업을 한다”고 표현하는데 기초 전략과 공사가 탄탄하지 않으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꼼수와 묘수(妙手), 악수(惡手), 자충수(自充手)=지난 정권에서 인기를 끈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로 익숙한 ‘꼼수’는 눈에 쉽게 보이는 얕은 속임수로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며 놓는 수를 가리킨다. 묘수는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울 만큼 묘하고 뛰어난 수를 가리킨다. 우리 인생에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묘수가 없을까?”라고 고민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악수는 수읽기나 판단을 잘못해 손해를 보는 ‘나쁜 수’다. 바둑에서는 ‘묘수를 두어 이기는 경우보다 악수를 두어 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생 역시 ‘한 방’으로 성공하는 사례보다는 ‘잘못된 선택’으로 실패하는 사례가 더 많다.

자충수 역시 악수의 일종이다. 스스로 자신의 활로를 메우는 수이며, 자신이 놓은 돌이 오히려 상대의 수를 줄여 줘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장고에 돌입했다”…장고(長考)= 장고란 오래도록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궁리하는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소비하면서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 최선의 수순 등을 헤아려 착수를 하기까지 깊이 몰입하는 과정으로, 일상에서도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장고에 돌입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초읽기=바둑에서는 주어진 제한시간을 다 쓰고 나면 초읽기에 들어간다. 초읽기는 대개 30초나 1분씩 3회나 5회씩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임박한 선택이나 결정을 앞두고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표현이 흔하게 쓰인다.

꽃놀이패= 꽃놀이패를 알려면 우선 ‘패(覇)’를 알아야 한다. 패는 나와 상대의 접해있는 돌이 서로 단수로 맞물려 있는 모양이다. 이 경우 서로 따내는 자리에 번갈아 두면 똑같은 모양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쪽이 돌을 따내면 상대방은 다른 곳에 한 수 이상 착수를 한 이후에 다시 따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패는 바둑의 변화를 가능케하는 묘미가 있다. 한편 꽃놀이패는 쥔 쪽은 잘못 두더라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으나 상대는 큰 피해를 모면하기 어려운 패를 뜻한다. “지금 상황은 나에게 꽃놀이패야”라는 말은 나는 어떤 선택을 해도 큰 손해가 나지 않지만 상대방은 선택에 따라 큰 위기에 빠지게 될 때 쓰인다.

소탐대실(小貪大失)= 고사성어로도 유명한 소탐대실은 바둑에서 눈 앞의 작은 이득을 탐하다 결국 큰 손해를 얻는 것을 뜻한다. 늘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이후의 수를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마(大馬)= 많은 돌로 구성돼 자리를 잡은 큰 덩어리를 ‘대마’라고 한다. 대마가 상대방에게 잡히면 자신이 놓은 많은 돌이 전혀 쓸모가 없어지고 상대방에게 집을 내주기 때문에 승리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대마는 결국 어떻게든 살 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의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도 있다. ‘대마불사’는 규모가 매우 큰 회사가 망하는 것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므로 결국 정부가 도와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경제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언론과 정치인, 기업인 등 사회 전반이 바둑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바둑 용어가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게 됐다”며 “바둑 용어를 쓰면 세련된 완곡어법의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번에 바둑이 다시 인기를 끌면서 용어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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