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다시 불붙은 면세점 大戰 ②]면세점의 흑역사…‘황금알’은 영원하지 않다
뉴스종합| 2016-03-18 17:43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한국의 면세점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 ‘황금알 낳는 거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면세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면세점 역사를 들여다 보면 ‘황금의 역사’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첫 면세점은 1962년 김포공항면세점이었다. 개점 당시 한국관광공사와 민간업체인 ㈜대규가 함께 운영했다. 공사와 민간이 같이 하다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 관광공사가 독점운영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내면세점 1호는 1974년 문을 연 남문면세점이다. 시내면세점 제도가 본격 도입된 것은 1979년 12월 제 23차 관세법 개정에서 보세판매상 제도가 개정되면서부터다.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는데 당시 한국에는 홍콩과 같은 제대로 된 면세점이 없었다. 외화가 부족한 시기, 관광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대형 면세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면세점 영업 자유화 방침을 내놓으면서 신규 시내면세점이 줄줄이 생겼다.

1986년 3월 서울 파고다 면세점이 개점한 데 이어 4월에는 서울 코리아다이아몬드 면세점, 7월에는 한진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각각 문을 여는 등 1986년에만 모두 5곳의 시내면세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면세점을 신청하면 심사를 통해 선별적으로 허가했으나 1986년에는 신청제로 바뀌면서 결격사유만 없으면 모두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1987년에는 서울 풍전면세점, 1989년에는 868, 인터콘티넨탈, 파고다 등이 앞다퉈 문을 열었다. 1989년에 전국 면세점 점포 수는 무려 29개까지 늘어났다. 외국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면세점 사업은 ‘황금알 낳는 거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면세점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줄줄이 폐점했다. 올림픽 등 세계적 행사를 겨냥한 탓도 있었지만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로 주 고객층인 일본 관광객이 줄어든 게 직격탄이었다. 868, 부산 신라면세점, 서울 파라다이스면세점 등 1995년에만 10개가 없어졌다. 1999년도에는 다시 3개가 생기고 2004년에 3개가 줄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롯데, 신라면세점, 워커힐면세점이 한국의 면세점산업을 이끌면서 세계 1위 면세점 산업으로 키웠다.

면세점은 경기에 민감한 산업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직격탄을 맞아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고성장을 거듭하던 면세시장은 휘청거렸다.

현재 한국 면세점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중국’이다. 중국인 여행객이 1990년대 처럼 급감하면 한국 면세점 산업은 다시 1990년대 암흑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산업의 특성상 외부환경에 아주 민감하다”며 “1990년대처럼 암흑기를 대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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