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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대학문화] ‘받아쓰는’ 대학생이 ‘군기문화’를 베낀다
뉴스종합| 2016-03-31 10:13
-사회에 필요한 가치에 대해 고민 부족한 대학생들



[헤럴드경제=원호연ㆍ김성우ㆍ구민정ㆍ이은지 기자] 지난 28일 부산 동아대 학생들이 신입생들에게 오물 섞인 막걸리를 뿌린 것을 시작으로 원광대 국어교육과 신입생 환영회와 충북대 건축학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학생들은 최근 불거진 ‘군기문화’ 문제에 대해 “이전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좋은 의도로 진행됐던 의식이었지만 이젠 ‘형식‘만 남아 ‘폐습’이 됐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있다.

연세대 생물학과에 재학 중인 구승현(31)씨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람을 모으기 힘들 때 학술제나 주점 등을 이유로 모여 술 한 잔에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던 행사가 이젠 그저 술잔만 주고받는 분위기로 변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쟁 위주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 내에서 내려오던 각종 의식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폐습’이 됐다. 100명 이상의 대형 강의와 상대평가, 부실한 토론에서 지성인으로서의 대학생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한양대생 임혜수(26ㆍ여)씨 역시 “기존의 문화들이 유대관계를 쌓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라면서도 “시대가 바뀐 이상 옛날 방법으로 다가간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의미가 퇴색된 것은 술 문화 뿐만은 아니다. 토론과 사색의 공간이었던 학회는 취업을 위한 스터디모임으로, 농민들에 대한 연대 의식이었던 농활은 ‘놀러가는’ 봉사활동이 됐다. 한신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최성민(26)씨는 “현충일마다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된 선배들을 기리는 ‘국문인의 날’마저 해가 갈수록 불참자가 늘고 뒷풀이에만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문제는 캠퍼스 안에서 “사회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배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한 SNS에는 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교수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쓰는’ 사진이 올라와 충격을 줬다. 강의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고민 대신 ‘암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대학에 어울리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그런데 이것이 낯선 풍경이 아니라는 게 대학생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윤서영(24ㆍ여)씨는 “학생들 절반가량은 그렇게 공부를 한다”고 전했다. 윤씨에 따르면 대형 강의에서 교수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앞줄 자리는 ’황금 삼각형’이라고 불린다. 인기 강의의 경우 이 자리를 맡기 위해 강의 시작 15분 전부터 긴 줄이 생긴다. 이 자리를 차지한 학생의 강의 ‘녹취’는 시험 기간에 1만~2만원에 팔린다.

윤씨는 “학점은 대개 상대평가로 매겨지다보니 세세한 부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A학점을 받을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장학금을 받고 기숙사에 합격할 수 있는 현재 대학 제도 내에서 ‘받아쓰기’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토론식 수업이나 발표식 수업 역시 다르지 않다. 해당 분야의 심도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학부생들 간에 이뤄지는 토론식 수업은 ‘도토리 키 자랑하기’에 불과하다. 한 반에 40명가량이 수업을 들었던 고등학교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토론식 수업이 90~100여명이 듣는 대형 강의에서 제대로 이뤄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조별 과제(팀플)를 통한 발표식 수업은 서로 ‘무임승차’하는 팀원끼리 견제하기에 바쁘다. 발표식 수업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교수는 묵묵히 학생들의 발표를 듣다 마지막에 코멘트 한줄 붙여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며 “이건 수업이 아니라 방기”라고 주장했다.

경쟁과 취업 중심의 교육이 대학의 문화를 시장중심으로 변화시켰다고 비판하는 ’진격의 대학교‘ 저자 오찬호 씨는 “지금 대학생들은 특정한 문제를 큰 그림에서 이해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문제의 원인을 사회 구조에서 찾자는 발상은 이들에게 덧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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