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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진단없이 정신병원 강제수용된 30대 아들…法 “퇴원시켜야”
뉴스종합| 2016-03-31 12:01
- 부모 요청으로 결박된 채 사설구급차로 이송
- 법원 “의사 진단없이 강제이송은 위법”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한파가 몰아친 지난 1월 어느날 이모(39) 씨는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사설응급업체 직원에 의해 몸이 결박당한 채 구급차에 실려 어디론가 이송됐다.

차가 멈춘 곳은 모 대학병원이었다. 이씨가 일주일 전에 왔던 곳이기도 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평소 아버지의 성추행을 주장하고 자신에 대해 망상을 드러내는 등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자 아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했다. 당시 정신과 전문의는 이씨에게 입원치료를 권유했다.

아들의 증상을 염려한 부모는 입원을 결정하고 일주일 뒤 사설응급업체 직원을 집으로 불렀다. 그러나 아들은 병원으로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사설응급업체 직원은 부모의 동의를 받아 이씨를 결박했다. 부모는 그렇게 눈 앞에서 아들이 강제로 몸이 묶인 채 병원으로 실려가는 것을 봐야 했다.

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와 마주한 이씨는 진찰 결과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고, 부모도 이에 동의하면서 결국 원치 않는 입원을 하게 됐다.

이씨는 곧바로 법원에 인신보호를 청구했다. 인신보호란 정신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강제입원된 사람이 법원에 구제를 청구하는 절차로 지난 2009년 처음 시행된 제도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정재우 판사가 30일 “수용을 즉시 해제하라”고 결정하면서 이씨는 72일만에 비로소 정신병동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

법원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 있기도 전에 사설응급업체 직원이 이씨를 결박하고 병원으로 강제이송한 행위를 문제 삼았다.

정신보건법 24조는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의 입원 의견이 있을 경우 당사자가 저항하더라도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의 경우 전문의의 대면 진찰과 진단이 이뤄지기 전에 강제력이 행사됐기 때문에 법원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정신보건법 26조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일단 강제입원시킨 후 사후에 규정 절차를 밟는 ‘응급입원’도 가능하다. 그러나 응급입원이 가능하려면 상황이 그만큼 매우 급박하다는 점이 인정돼야 하고, 의사와 경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정 판사는 “당시 이씨가 자해하거나 타인을 해할 만큼 위험성이 크지 않았고, 입원 과정에서 의사와 경찰의 동의도 없었다”며 응급입원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다.

결국 병원 이송행위 자체가 법을 어겼기 때문에 후속으로 이뤄진 입원 역시 위법이라고 정 판사는 설명했다.

병원 측은 “이씨가 여전히 과대망상을 보이고 있고, 퇴원하면 약물복용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 판사는 “주치의 소견에 의하면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처음보다 많이 감소했고,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다”며 계속 입원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번 결정은 사설응급업체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병원에 이송시키는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며 “사후에 보호의무자에 의한 정당한 입원 요건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위법한 방법으로 병원 이송행위가 이뤄졌다면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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