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김현경의 맘다방]흠집만 보면 “아파, 약”을 외치는 아이
뉴스종합| 2016-04-01 14:01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지난 설 명절 가족이 모여서 윷놀이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아파! 아파!” 하고 외쳤습니다. 어디가 다쳤나, 배탈이라도 났나 놀란 마음으로 아이를 살펴보니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아이는 들고 있던 윷을 가리켰습니다. 아이가 가리킨 곳에는 까맣게 보이는 옹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곳과 색깔이 다른 움푹 파인 부분이 아이의 눈에는 아픈 상처처럼 보였던 겁니다.

이후로도 아이의 “아파”는 계속됐습니다. 놀이매트의 찢어진 곳을 봐도 아프다고 하고, 식탁에 흠집이 난 부분을 봐도 아프다고 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물려 받은 장난감 자동차의 빠진 문이나 인형의 찢어진 팔을 볼 때는 한층 더 심각하고 슬픈 표정으로 “아파”라고 말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이는 아프니까 치료해줘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약”, “주사”, “병원”을 연신 외치며 엄마가 조치를 취해주길 바랐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장난감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우리가 호~ 해주면 나을 거야”라고 말하고 같이 호~ 하고 불어준 뒤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줬습니다.

물건에 난 작은 흠집 하나에도 큰일이 난 것처럼 심각하게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뭉클해졌습니다. 저나 다른 어른들도 아기였을 땐 저렇게 예쁜 마음으로 예쁜 말을 했을텐데, 이제는 그런 마음도 시선도 사라져버렸구나 싶어 씁쓸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순수한 아이도 어른이 되면서 동심을 잃고 각박해질 거란 생각을 하니 더 슬펐습니다.

아이처럼 나 외의 다른 대상의 작은 상처도 눈여겨 보고 같이 아파하는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공감 능력’일테니까요. 하루에도 수백건씩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사고나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정치…. 세상의 많은 나쁜 일들 중 상당수는 이 공감 능력의 부재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장난감은 다행히 진짜 아프지 않고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앞으로 자라면서 겪을 세상은 진짜로 아프고, 때로는 약도 없고, 괜찮다고 말해줄 수도 없을텐데. 벌써부터 미안한 요즘입니다.

아이가 지금의 예쁜 마음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구나. 아이를 통해 또 하나 배워갑니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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