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장애인의 날 ‘서글픈 현실’] 운전교육에만 한달 이상 대기…면허증 따는 길 곳곳이 ‘장애물’
뉴스종합| 2016-04-20 11:29
“양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데, 그래도 운전을 할 수 있을까요?”

운전을 하고 싶었지만 청각장애 때문에 망설이기만 했다는 조용선(38ㆍ여) 씨의 질문에 상담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스티커만 차에 붙이면 2종 면허도 딸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수화로 십여분간 이어진 조용한 대화 후 조 씨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최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 체험행사에서 사람들이 특수 차량을 둘러보고 직접 체험도 하고 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지난 18일 관련 행사인 ‘함께서울 누리축제’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은 각종 체험부스를 찾은 장애인과 보호자들로 붐볐다. 공원 한켠엔 장애인 시설 마크가 붙은 승합차와 버스가 가득했다. 공원 한복판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법률상담부터 공공후견인 신청과 같은 상담 창구와 함께 각종 생활 복지 체험관을 비롯한 20여개 부스는 오후 내내 손님들로 꽉 찼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큰 인기를 끈 곳은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관련된 부스였다. 20여개 부스 중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부스만 다섯 곳이었다.

교통면허 기능시험 상담 부스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은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실제 교통면허 시험용 특수차량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된 곳에선 이를 체험해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시승용 차량에는 다리가 불편한 이용객을 위해 손으로 작동하는 가속페달, 오른손만으로도 모든 조작이 가능한 특수 레버 등 다양한 편의 장치가 설치됐다.

그러나 일부 상담객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면허를 따기도 어렵지만 운전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 때문이었다. 전국에 장애인용 특수차량이 구비된 교육장이 서울 강서장애인지원센터를 비롯해 용인, 부산, 광주 등 네 곳 뿐인데, 지원자는 많다보니 대기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신재 도로교통공단 강서장애인지원센터장의 설명이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박선화(55ㆍ여) 씨도 “남편이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하는데 운전면허 교육을 받을 곳이 없어 항상 대신 운전해왔다”며 “이 차라면 남편도 운전을 할 수 있겠지만, 운전교육만 한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니 속상하다”고 했다.

장애인들의 여행을 지원한다는 사단법인 ‘그린라이트’가 마련한 장애인 여행 지원 부스도 방문객들의 눈길을 받았다. 전동 휠체어를 실을 수 있도록 개조한 승합차를 시운전하자 관람객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기도 했다. 장애인 방문객들은 진행 요원을 붙잡고 이것저것 문의하며 여행 지원 신청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두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온 김병욱(49) 씨는 “여행을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장애인 콜택시를 대절해야 하는데, 서울 시내에서도 2시간 이상 걸릴 때가 많고 대절은 더 어렵다”며 “출퇴근길에 항상 만원인 저상버스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는 “이 단체 역시 한달에 다섯 가족 밖에 지원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일단 신청부터 했다”고 했다.

무료로 차량과 기사, 유류비까지 지원해 장애인들의 관심은 높았지만 역시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주최 측도 “2012년부터 시작해 약 2만명을 지원했지만 일정이 빠듯해 가까운 곳으로 여행가는 경우가 많다”며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다보니 대기자가 너무 많아 우리도 안타깝다”고 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최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한 체험행사에서 사람들이 특수 차량을 둘러보고 직접 체험도 하고 있다.

행사장에서는 이들 부스 뿐만 아니라, 장애인용 특수 LPG차량 구매 상담, 전동 휠체어 관련 상담 부스 등 이동권과 관련된 부스에 사람들이 몰렸다.

그러나 높은 수요에 비해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작년 한해 동안 강서에서 장애인 운전면허에 도전한 사람은 45명으로 이중 28명만이 면허를 딸 수 있었다. 이 센터장은 “다양한 장애 유형에 맞는 차량을 수배할 수 없어 교육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현재 용인에 특수차량이 한대 있는데, 우리도 어떤 장애 유형에 맞는 차량을 구입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고 했다. 행사를 기획한 서울특별시 지체장애인 협회 관계자도 “장애인들도 편하게 이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한데, 실상은 너무 힘들다”며 “생각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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