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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칼럼] 귀농귀촌과 ‘챔피언 벨트’ -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부동산| 2016-05-24 11:19
농사일로 바쁜 5월 초순의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허리에 격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마음과는 달리 몸은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씨 뿌리고 모종심고 김매는 일련의 농사일을 계속 무리하게 한 게 탈이 났다. 이틀간 거의 반신불수 상태로 있다가 다행히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농사란 자연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 아프다고 마냥 쉴 수만도 없다. 그래서 허리에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서서 김매는 농기구를 사고, 급기야 임산부가 사용하는 허리복대까지 둘렀다. 이쯤 되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 농사다.

복대를 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니 마치 ‘챔피언 벨트’를 두른 것 같다. 강원도 산골의 비탈 밭 위에서 7년 차 된, 그러나 아직도 어설픈 한 농부는 그렇게 서 있었다. 온전한 농부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이려니 하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한편으론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며칠이었을망정 복대 찬 인생 2막은 전혀 원치 않았던 결과였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의 도시를 내려놓고 보다 여유로운 전원에서의 2막 삶을 찾아 시골로 내려온 이들 가운데 ‘챔피언 벨트’를 차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귀농인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산채를 재배하는 귀농인 K(60ㆍ강원 홍천)씨는 “계속 무리해서 일하던 중 비료포대를 들다가 허리에서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허리를 쓰지 못해 결국 한동안 병원신세를 졌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귀농인 P(58ㆍ강원 화천)씨는 “요양을 겸해 시골로 들어갔는데 농사일이란 게 생각보다 힘만 들고 돈은 안 되고, 게다가 몸은 더 망가져서 최근 밭과 비닐하우스를 처분했다”며 다시 도시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귀농ㆍ귀촌 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시골생활에 임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렇게 자생력을 키워야 농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특히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귀농의 경우, 초기 2~3년은 군대식 극기 훈련을 받겠다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농부 챔피언’을 꿈꿔서는 곤란하다. ‘농부 챔피언’은 아마도 매스컴마다 성공사례로 집중 보도하는 억대농부 쯤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정부 통계를 보면, 농축산물 판매액이 연간 1억원 이상 되는 억대농부는 우리나라 전체 농가(2014년 기준 112만1000가구) 중 고작 2.7% 뿐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해도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온 5060세대가 이런 억대농부를 꿈꾼다면 이는 열정이 아닌 과욕에 가깝다. 요즘 귀농ㆍ귀촌 창업, 6차 산업 창업, 스마트 팜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농업ㆍ농촌에 무슨 노다지 광산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역시도 도시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다.

여유로운 힐링의 삶을 찾아 시골로 왔지만 정신없이 경쟁하다가 전혀 원치 않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나서야 후회하게 된다. 당신은 왜 자연으로 왔는가. 힐링인가, 경쟁인가. 귀농ㆍ귀촌 열풍시대에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아야 할 화두다.

-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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