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중 7명은 모르는 사람에 당해
15~30세 피해자는 ‘95%가 여성’
#1. 부산지법은 최근 길을 지나는 여성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른 정신분열증 환자 A 씨에게 살인미수, 상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A 씨는 거리를 지나다가 음식물을 버리는 40대 여성,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10대 여고생, 신발가게 40대 여주인 등에게 접근해 갑자기 과도로 옆구리를 찌르고 달아났다. 재판부는 “A 씨의 정신과 진단 결과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며, 편집증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2.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30대 B 씨는 최근 인천의 한 골목을 지나는 21세 여성을 발견하고, 뒤따라가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수사 결과 B 씨는 이 지역 골목에서 1~2개월 간격으로 5명의 다른 20대 여성들의 뒷통수를 잇따라 돌이나 병 등으로 때려 상해를 입혔다. 검찰은 B 씨의 범죄 동기에 대해 “생활고가 심했고, 여성들을 상대로 피해의식이 컸다”고 했다. 인천지법은 B 씨에게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등 여성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여성혐오(여혐) 범죄가 최근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대법원,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여혐 범죄에 대한 통계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혐 범죄는 특정한‘행위’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범행 ‘동기’를 따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구분하기 쉽지 않다. 살인, 폭행, 성폭력, 재물손괴, 방화, 사기, 모욕 등 어떤 범행이라도 동기가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를 바탕에 두고 있다면 여혐 범죄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여혐 범죄 증가 추세는 최근 강력 사건에서 여성 피해자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강력범죄(살인ㆍ강도ㆍ성폭력ㆍ방화, 2014년 기준) 전체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8.7%(2만7567명)로 남성 11.3%(3507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2000년 71.3%(6245명)이던 것이, 2010 82.9%(2만1494명)로 80%를 넘어선 이후 90% 돌파 직전까지 폭증했다. 특히 15~30세 연령대에선 강력범죄 피해자의 94.7%가 여성이다.
주목할 점은 여성 피해자 범죄에서 가해자와의 관계가 친구, 애인, 지인 등이 아닌 ‘타인’으로 분류된 비율이 67.6%나 된다는 사실이다. 강력범죄 피해 여성 10중 7명이 모르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묻지마 범죄’라는 이야기다.
묻지마 범죄의 상당수는 여혐 정서가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을 연구한 결과 ‘만성분노형’이 45.8%로 가장 많고, ‘ 정신장애형’이 37.5%로 뒤를 이었다. 만성분노형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잘못 해석해 분풀이로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다. 정신장애형은 조현병 등 신체적 장애가 있고, 환상, 망상 등에 사로잡힌 경우를 의미한다.
최근 인천에서 거리를 지나가는 20대 여성을 따라가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하고 금품을 갈취해 구속 기소된 30대 남성 C 씨는 평소 여성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오해해 분풀이로 범죄를 저지른 만성분노형이다.
그는 사실 똑같은 방식으로 36회나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성추행하고 금품을 갈취해 징역 6년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였다. 출소 5일 만에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C 씨에 대해 검찰은 “정신감정 결과 여성에 대한 적개심이 심각하다”고 적시했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