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미인도, 국민과 눈 마주친다
라이프| 2016-05-30 11:42
국립현대미술관 공개여부 주중 결정
대중-전문가 의견 묻기로…유족은 반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 그것이 소문을 낳고 괴담을 재생산하고 있다.”(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

A4 한 장 정도 크기의 그림 한 점이 25년째 국내 미술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이 소장 중인 ‘미인도’다.

‘미인도’는 국립미술관 소장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었다. 고(故)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생전에 화백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진위 논란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 일반 공개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본지 5월 27일자 단독 보도) ‘미인도’에 대한 ‘심판’을 대중과 전문가 집단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마리 관장은 지난 18일과 13일, 각각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 씨와 차녀 김정희 씨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갖고 있는 정보로는 작품의 진위 논란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작가명 없이 작품명으로 대중과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게 하고자 한다”며 유족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씨와 김 씨는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마리 관장에게 보냈고,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먼저 김 씨는 27일 “미인도 공개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며 검찰의 결정을 기다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김 씨는 당초 “미인도 원본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최근 “대중에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에 공개하라는 것”이라는 입장을 구체화했다.

장녀 이혜선 씨 역시 30일 “미인도는 이미 1991년에 어머니가 본인 그림이 아니라고 했다.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가짜 사인이 있는 그림을 걸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유족들의 세부 입장은 다소 엇갈렸다. 김 씨는 “향후 수사기관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리겠다”는 쪽이지만, 이 씨는 “소송에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 않다. 미인도는 25년 전 작가가 본인의 그림이 아니라고 확인시켜 줬고, 그것으로 끝나야 했던 일”이라는 입장이다. 소송이 유족들 간 합의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관이 ‘미인도’의 일반 공개를 추진하고 나선 데에는 그간 미인도를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부풀렸다는 미술계 지적이 작용했다.

특히 김 씨가 지난달 27일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ㆍ고발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술계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제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쪽도 있고, “이제와서 공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쪽도 있다. “소송전으로 치닫기 전에 중립적인 인사들이 미술관과 유족들 간 중재를 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랫동안 ‘미인도’ 논란을 지켜본 대중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있다. 해묵은 미인도 논란에 발목 잡힌 국립현대미술관은 새 외국인 수장을 맞이하고도 동력을 얻지 못한 채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선보인 몇몇 기획 전시들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 공개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 중이다. 이번 주 중 관계자 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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