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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자의 날] 25년 전보다 더 팍팍해진 무주택자들
부동산| 2016-06-03 08:43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30대 후반의 직장인 정모 씨는 강남구 개포동 주공4단지에 전세로 살고 있다. 그는 직장 동료들에게 스스로를 ‘예비 경기도민’이라고 부른다. 재건축 막바지 단계에 있는 개포4단지는 올 가을께 이주가 예정돼 있다. 그가 나중에 집주인으로부터 건네받게 될 전세 보증금은 9500만원(전용 42㎡). 이 정도로 서울에서 새 전셋집을 마련하긴 마땅치 않다. 그는 대출로 돈을 보태 용인 기흥구 일대에서 1억원대 전셋집을 찾을 생각이다.

3일은 25번째 ‘무주택자의 날’이다. 1992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가 “쫓겨나는 철거민, 주거비에 허덕이는 도시 세입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선언한 날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은 주택 전셋값이 치솟았던 시기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89년 29.6%, 이듬해엔 23.7% 가량 올랐다. 그 당시 신문엔 전셋값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입자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실렸다.



‘도시 세입자들과 철거민’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상황은 25년 뒤에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상징적인 현상.

20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주거회의 ‘UN-해비타트(Habitat) III’의 한국 민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은 이원호 씨는 “20년 전엔 철거민들의 문제가 심각했다면, 지금의 도시는 겉으론 번듯하지만 그 안에선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밀려나는 이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가 올해 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금(3억7800만원)은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 연소득(약 5321만원)의 7.1배에 달한다. 7년 이상 고스란히 소득을 모아야 전셋집에 겨우 들어간다는 얘기다.

2011년만 해도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는 평균 연소득의 5.4배였으나 ▷2013년 5.7배 ▷2014년 6.1배로 야금야금 오르고 있다. 주거비가 오르는 속도와 소득의 상승 속도가 해마다 비대칭해지고 있는 셈이다.

86년부터 작성되고 있는 KB국민은행 전세가격지수는 가파른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작년 12월의 평균 전세 수준을 100으로 두면, 20년 전인 95년 말 서울 전세가격지수는 40 수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 지난 2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20대 국회의 서민주거안정 대책을 촉구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늘어나는 1~2인 가구에 맞춘 작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 더불어 민간의 임대주택에도 안정적인 임대료로 오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주거 문제에 여야가 마음을 모아 20대 국회에서 내일처럼 나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25년간 정부가 네이밍(이름짓기)만 달리 하면서 상당한 임대주택을 공급했는데, 과연 무주택자들의 이슈가 해결됐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무주택-유주택 구도는 소모적인 논쟁만 일으킨다. 앞으론 개개인의 주거의 질을 본질로 두고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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