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세상읽기] 관피아, 정피아 넘어 메피아
뉴스종합| 2016-06-10 11:16
세월호 참사 한달 여 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약속했다. ‘국가 개조’ 차원이라는 말을 수 차례 언급할 정도로 그 의지는 단호했다. 이후 공무원 재취업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일련의 조치가 이어졌다. 실제 일부 기관과 기업에서 예정됐던 관료 출신 영입이 없었던 일이 되는 등 ‘세월호의 분노’와 맞물려 외견상 관피아는 조금씩이나마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 자리를 하나 둘, 정치권 또는 권력 주변 인사들이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정피아다. 이들은 그나마 관피아들이 가진 경험과 전문성 비슷한 것도 없었다. 오직 관심은 억대 연봉과 정치권 동향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관피아가 낫다는 소리까지 나왔을까. 여우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난 셈이다. 그렇다고 관피아가 정당화되는 건 물론 아니다.

서울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실체가 드러난 메피아(메트로+마피아)는 가히 ‘○피아’의 최강이라 할 만하다. 아무런 제재와 감시의 눈길이 닿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메피아의 모습은 외눈박이 공룡이었다. 바깥 세상의 상식을 뛰어 넘는 부정과 비리의 DNA가 제멋대로 진화한 것이다.

그 행태는 정피아와 관피아 등과 전혀 결이 달랐다. 적당히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조직과 사회 발전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철저히 차별하고, 그들에게 돌아갈 몫을 갈취하는 시정(市井)의 건달 조직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사망한 김씨가 속한 은성PSD의 인적구조와 경영 상황을 보면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우선 이 회사 대표 이사를 비롯한 임직원의 40%가 서울메트로 출신이다.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와 용역 계약을 하면서 퇴직자의 일부를 받아주도록 명시했기 때문이다. 급여도 종전의 60~80%를 보장하라고 아예 못을 박았다. 그 반대 급부는 수백억원의 용역비다. 서울메트로에 대한 인적 구조조정 압박이 가중되자 용역업체를 인원감축의 배출구로 삼은 것이다.

김씨의 월급은 144만원정도였다. 그러나 메피아 출신들은 그 2배, 3배가 넘었다. 정작 화가 나는 것은 그러면서도 업무에는 거의 투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은성은 스크린도어 수리 전문업체인데 서울메트로에서 옮겨온 이직자들은 역무원 등 전혀 상관없는 분야 출신들이다. 2~3주 가량 간단한 교육을 받은 게 고작이고, 그나마 적극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메우느라 김씨같은 일반 채용자들은 컵 라면도 제때 못먹을 정도로 뛰어야 했다. 그러다 열아홉살 청년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피아 척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게 잘 지켜질지 의문이다. 박 시장 스스로 메피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서 정리하겠다는 게 우선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구의역 분노’에 밀린 일과성 약속으로는 메피아의 뿌리는 절대 뽑히지 않는다. 박 시장이 정치 생명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정도 의지가 없다면 큰 꿈은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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