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한 젓가락 하실랭면] 평냉역사의 산증인 ①우래옥
HOOC| 2016-06-25 11:06

[HOOC=신보경 인턴기자] “이게 뭐야, 아무 맛도 안 난다고. 너무 밍밍한데?”

평양냉면을 처음 맛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미각이 미성년에 머물러 있다”며 면박으로 응수한다면 그 방법이 썩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당장 우리네 밥상을 떠올려보시라. 짭짤하고 매콤하고 시큼한 밑반찬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강한 맛에 익숙해져 있다가 짠 것도 아니고 구수한 것도 아닌 슴슴한(‘심심하다’의 북한말) 평양냉면의 육수를 한 모금 들이켰을 때, 낯설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앞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양냉면의 그 밋밋하고 심심한 맛이 자꾸만 입가에 맴돈다는 것이다. 서너 번쯤 평양냉면을 먹어 보면 이내 평양냉면이 도무지 헤어 나올 수가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스타그램에서 평양냉면만 검색 해봐도 무려 5만여 건의 사진이 등장한다. (개중에 내 지분도 꽤나 될 것이라 자부한다) 평양냉면 마니아를 일컫는 ‘평뽕’, ‘냉면성애자’라는 지독한 별칭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매주 토요일, 네 번에 걸쳐 연재될 ‘한 젓가락 하실랭면’에서는 뙤약볕에 서서 오랜 시간 줄을 서도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을 생각에 힘을 내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글이다. 다만 어느 곳의 냉면이 제일이라고 설전을 벌이기보다, 이제 막 평양냉면에 입문한 이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와 지극히 주관적인 냉면 썰 그 어디쯤을 지향한다.

우래옥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냉면 명가 두 곳과 떠오르는 냉면집 세 곳을 돌아볼 계획이다. /유현숙 디자이너


1화. 우래옥

연재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나라 평양냉면 역사의 산증인인 우래옥되시겠다. 1946년 ‘서북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우래옥은 역대 대통령 중 안 다녀간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냉면집이다. 우래옥이라는 상호는 又(또 우), 來(올 래). 다시 돌아와서 문을 열었다는 의미다. 6·25전쟁으로 가게가 문을 닫았다가 전쟁이 끝나고 영업을 재개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냉면 마니아들에게는 ‘문지방이 닳도록 다시 드나들게 된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겠다.

우래옥은 평양의 자랑, 북한의 평양냉면 명가 옥류관 보다도 오래되었다. /유튜브 '평양랭면 제일이야' 갈무리


(1) 육수의 심심함

우래옥은 진한 육수의 향으로 유명하다. 다른 냉면집과 달리 동치미 국물이나 부재료 없이 특A급 한우로만 육수를 내기 때문. 진한 고기 육수 덕분에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도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한다. 연재의 첫 번째 순서로 우래옥을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양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무미’에 가까울 정도로 심심하고 심심한 맛이다. 하지만 기름기를 걷어낸 우래옥의 담백한 육수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혀 질림이 없다. 냉면을 먹는다기보다는 시원한 고깃국을 마시는 느낌이랄까. 손꼽히는 평냉 마니아인 음악평론가 배순탁은 우래옥이야 말로 자신이 ‘냉면성애자’로 거듭나게 한 곳이라 평하기도 했다.

헤이 모두들 안녕? 내가 누군지 아니? 한우다! 한우다!


(2) 메밀면

주문과 동시에 뽑아내는 메밀면의 쫀득함과 향도 가히 일품이다. 입안 가득 면을 우겨넣고 씹다보면 그윽하게 퍼지는 메밀향이 밀가루 면과는 또 다른 먹는 재미를 준다. 메밀은 찰기가 없기 때문에 보통 메밀과 전분을 섞어 면을 만든다. 우래옥의 경우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제면 방법이 달라지는데, 보통 메밀과 전분의 비율이 7 대 3 정도지만 장마철에는 6 대 4 정도로 바뀐다고 한다.


(3) 고명

우래옥 냉면의 또 다른 특징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고명이다. 채 썰어 낸 배, 새콤한 무절임과 김치, 야들야들한 편육이 넉넉하게 면발 위에 살포시 앉아있다. 흔히 냉면 고명으로 올리는 삶은 달걀은 없지만, 결코 부족한 구성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오이 향에 질색하는 인간인지라 오이 고명이 올라 있지 않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다. (전국의 수많은 오이 헤이러들은 이 점을 참고하시라) ▶관련기사 “이게 다 유전자 때문”...왜 오이를 못 먹냐고 묻는 당신에게


(4)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평양냉면

우래옥에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 메뉴가 있다. 놓치지 말고 시켜라. 예) 손을 들고 “이모, 여기 거냉 한 사발 말아주소”라고 말하면 된다.

1) 거냉: 육수의 향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냉면 육수를 미지근하게 데운 냉면
2) 엎어말이: 곱빼기
3) 순면: 전분이 섞이지 않은 100% 메밀면
4) 민짜: 고명을 빼고 면을 더한 냉면



- 가격 12,000원
- 위치 (본점)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 영업시간 오전 11:30 ~ 오후 10:00 (매주 월요일 휴일)
- 특징 진한 소고기 육수, 화려한 고명 구성, 백발이 성성한 주 고객층
- Tip 겨자보다 식초의 비중을 높일 것을 추천. 오직 소고기로만 낸 육수이기 때문에 새콤한 맛이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자고로 필자는 담백한 육수의 참맛을 즐기기 위해 식초와 겨자를 넣지 않는다. 평냉을 먹을 땐, 식초와 겨자를 잠시 치워둬도 좋습니다.

bb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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