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슈퍼리치]‘실적부진’ 랄프로렌…SPA출신 CEO로 위기 돌파
뉴스종합| 2016-07-01 10:31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 기자ㆍ김세리 인턴기자] 미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랄프로렌(Ralph Lauren)이 위기 극복을 위해 변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 상류층을 대표하는 ‘매스티지 브랜드’로써의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시대흐름에 맞추어 ‘패스트패션’의 변신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SPA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젊은 최고경영자(CEO)도 영입했다.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바로 스웨덴 출신의 스테판 라르손(Stefan Larssonᆞ41) 새 CEO다. 스웨덴 출신의 그는 H&M, GAP 등 유명 SPA브랜드 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던 인물이다. 지난해 11월, 그는 랄프 로렌(76) 회장을 뒤이어 CEO 자리에 오르며, 랄프로렌 50년 역사상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영인으로 주목 받았다. 패션업계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유명한 랄프로렌에서 패스트패션 업계 출신의 젊은 CEO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스테판 라르손(41) CEO

그렇게 랄프로렌호의 조타수가 된 라르손이 본격적인 혁신안을 최근 내놨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언론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랄프로렌은 현재 490여개의 매장 중 50개 매장의 문을 닫고 전체 고용 인원의 8%에 해당하는 1000여명 인원 감축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랄프로렌은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 등에서 4억달러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다.

패션업계에서 1000명을 감축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의류 기획과 디자인에서부터 생산 제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손이 많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패션사업이기 때문이다. 사업이 확장될수록 고용 인원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랄프로렌으로선 그만큼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랄프로렌의 올해 1분기 매출은 72억3000만달러(8조5280억원)로 전년 대비 12%나 떨어졌다. 순 이익은 3억9600만달러로 1년 만에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같은 기간 주가는 30% 폭락하며, 경쟁 브랜드 선상에 있는 코치(-4.82%), 마이클코어스(-6.32%) 등의 낙폭을 크게 뛰어넘었다.

랄프로렌 로고

랄프로렌은 우선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구조를 효율화 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고급 이미지와 ‘슬로우패션’ 전략에서 완전히 반대되는 변화를 돌파구로 제시하고 나섰다. 스테판 라르손 CEO는 H&M, GAP 등 유명 저가브랜드에서 근무한 경험을 되살려 랄프로렌도 저렴한 가격으로 ‘패스트패션’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르손은 랄프로렌의 매출 하락 요인으로 우선 지나치게 높은 백화점 의존도를 꼽는다. 고객들의 소비패턴이 온라인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랄프로렌은 너무 많은 브랜드와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랄프로렌의 작년 매출 중 45%만이 온라인 공급망을 통해 이뤄졌다. 비슷한 등급의 경쟁 브랜드에 비해 높지 않은 수치다. 전통에만 의존하고 있는 브랜드 자체의 경쟁력도 떨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대중패션산업의 소비자들이 빠르게 소비하면서 높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음에도 랄프로렌이 여전히 ‘느린 전략’과 비싼 가격만 고집한다고 지적한다. 중고가 브랜드군에 속하는 랄프로렌 등은 결국 고객을 빼앗기고 명품으로서의 입지까지 애매해져 위아래로 치이는 형국이 되고 있다.
 
랄프로렌 한국 사이트(플로그십 스토어)에 올라온 폐쇄 글

랄프로렌은 매장 축소의 일환으로 한국·일본·홍콩 등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과 호주에서 온라인 플로그십 스토어를 폐쇄했다. 또한 화장품·가죽제품·신발·안경 등 9개로 뻗쳐 있는 사업부문도 주력상품 6개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 랄프로렌은 주력 아이템 30%가 전체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다. ‘선택과 집중’ 방식을 취하겠다는 스테판 라르손의 경영 방침이 들어간 부분이다.

스테판 라르손은 취임하자마자 과감한 경영 방침으로 화제를 몰았다. 그는 “패션 브랜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오늘날 사람들이 꿈꾸는 삶과 스타일을 공급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유가 많은 사람들만 주로 향유하는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탈출하자는 것이다. 저가 아이템과 패스트패션 등 라르손의 친(親)대중적 경영은 그가 15년간 패션업에서 근무하는 동안 핵심적인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방법이다.

올드네이비 의류

2012년~2015년 올드네이비(미국 의류업체 GAP의 저가 브랜드) 사장을 지낸 그는 올드네이비 브랜드 가치를 GAP의 주요한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했다. 올드네이비 매출은 그가 사장으로 있던 3년 동안 30억달러 넘게 성장했다. H&M 글로벌 영업 팀장을 맡을 당시엔 글로벌 공급망을 12개국에서 44개국으로 넓히며, 매출을 30억달러에서 170억달러 가까이 성장시켰다.

그는 성공 경험을 랄프로렌에서도 꾸준히 이어나가고자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영광만을 갖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투자자들 앞에 선 그는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제품을 찾아서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려 한다”며 소셜미디어가 사람들한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했다.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소비자 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비자 선호 브랜드 순위를 언급하며 브랜드 강화를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 한 설문조사기관에서 발표한 소비자선호도 점수에서 랄프로렌은 제이크루·캘빈클라인·마이클코어스 등 경쟁 회사들을 누르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좋은 브랜드 이미지가 바로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팝업 스토어, 저가 공략, 패스트 패션, 온라인 매출 강화 등이 앞으로 랄프로렌이 취할 방향으로 보인다.

창업자 겸 전 CEO 랄프로렌(76)

창업자 랄프로렌은 1967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쭉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다 작년 라르손 CEO의 취임을 계기로 물러났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직접 의류 제작에 참여해 온 그는 3년 연속 이어진 매출 부진에 전문 경영인과 디자이너 업무를 분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미국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의류 디자인에 녹여 ‘누구나 특권층이 될 수 있다’는 환상 마케팅으로 랄프로렌을 키웠다. 현재 회사 지분 82%를 소유하며 최대주주로 올라 있다. 사임 후에도 회장 겸 최고책임자(CCO)로 경영에 참여하며 중요한 결정권 또한 아직 그의 손 안에 있다.

랄프로렌은 처음 라르손을 영입할 때만 해도 자신과 상반되는 경영 철학을 가진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스테판 라르손)의 생각에 동의한다”며 적극적인 지지자가 됐다. 스테판 라르손 역시 전 CEO가 고수해 온 고급 브랜드 이미지 자체를 탈피하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미국의 가장 유명한 패션 브랜드로서 명성을 잇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실적부진을 어떻게 해소해낼지 관심이 쏠린다.

ser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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