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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환 칼럼] 인문의 숲에서 길을 묻다 ⑩
뉴스| 2016-07-21 12:04
[헤럴드경제 = G밸리 노재환 논설위원 기자]‘그냥’이라는 말이 참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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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환 헤럴드경제 G밸리 논설위원

하늘은 뜻이 없어 맑고, 산들은 말이 없어 푸르고, 꽃들은 생각이 없어 곱다. 그냥 맑고, 그냥 푸르고, 그냥 곱고. 사람들은 생각이 있어 어둡고, 생각이 있어 부산하고, 사랑에 의미가 있어 괴롭다. <박이문 시인의 ‘무의미의 의미’ 中에서>

오늘따라‘그냥’이라는 말이 참 듣기가 좋은 날이다. 순간 나로부터 나에게 철학적인 질문은 이미 던져졌다. 이 글이 “우리의 일상으로 이어진 삶에 있어 어떠한 긍정적 의미를 주는가?”를.

아마도 사람들이 일상을 있는 그대로 실재처럼 본다면, 우리의 경험은 날마다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평생 과도한 불안에 지쳐 있다. 나이, 죽음, 안전에 대한 공포 등 이 모든 것과 연관된 ‘불안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감히 말해본다. 현재 우리나라를 한 마디로 규정하면 ‘빈틈이 사라진 나라’라고. 강물이 흐르며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양이 하루 1000톤이라면 999톤의 폐수를 버린다 하더라도 1톤의 여분 때문에 강물은 흐르며 이온작용, 미생물의 분해, 식물의 흡수로 늘 1급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이미 그러한 여분 즉, 빈틈이 사라진지 오래다. 자연에서든, 국가에서든, 사회에서든, 사람들의 마음에서든 단 한줄기의 희망의 빛, 막힌 숨통을 뚫어 줄 작은 구멍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부모세대를 거슬러, 어머니 당신이 끼니를 거르는 형편일지라도 대문 가까운 곳에 개다리소반을 걸어두었다가 거지가 오면 밥상을 차려주는 빈틈이 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갈등은 첨예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한 쌀과 곡물이 생산되지만, 이의 배분이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메이저 곡물회사들이 가격 유지를 위해 곡물을 버리면서까지 물가를 조정한다. 일부 부자들의 넉넉함으로 겉으로는 풍요 속에서 행복한듯하지만 소외, 불안, 고독, 스트레스, 우울증, 비만 등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해마다 850억 달러를 10년 동안 투자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이 기초적인 교육과 의료와 위생 시스템을 보장받고 적절한 영양, 식수, 여성의 경우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총 8500억 달러면 10억 명의 사람들이 영원히 굶주리지 않게 함은 물론, 그들에게 기초적인 의료와 교육을 실시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는데, 미국 한 나라에서만 너무 먹어서 비만 관련 의료비로만 매년 147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으며, 군사비로 매년 1조 7000억 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고 한다.

화석연료를 대체한 에너지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빈틈이 사라져 지구의 자원과 인간의 관계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확대재생산의 원리는 머지않아 작동을 멈출 것이다. 혁명은 아니더라도, 설혹 이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하더라도 전자의 예에서 추론하듯, 우리에게는 빈틈이 절실하다.

진보든, 보수든 사회갈등을 야기할 만한 일들을 바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사회갈등의 근본 원인과 대안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fanta73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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