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도 아빠는 처음이야2] 24개월 후, 다시 떠올린 출산 D- DAY
뉴스종합| 2016-08-04 17:28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육아휴직 경험기도 아닙니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죠. 24개월 아이를 둔 30대 중반, 그저 이 시대 평범한 초보아빠입니다. 여전히 내 인생조차 확신 없으면서도 남편, 아버지로의 무게감에 때론 어른스레 마음을 다잡고, 또 때론 훌쩍 떠나고 싶은, 그저 이 시대 평범한 초보아빠입니다. 위로받고 싶습니다. 위로되고 싶습니다. 나만, 당신만 그렇지 않음을 공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그런 뻔하디 뻔한 이야기입니다.>



어느덧 24개월. 이젠 허벅지에 도톰하게 살도 올랐다. 2014년 출산일,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기대 반 무서움 반. 아내와 비할 바 못하지만, 남편 역시 무섭긴 마찬가지다. 한편으론, 한없이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머리가 다 뽑힐지 몰라” 웃으며 나누는 농담 후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말 뽑힐까?’, ‘정말 뽑을까?’ 그렇게 각자 둘은 상상한다.

출산 하루 전, 예정일이 이틀 남았던 날이다. 회사로 전화가 왔다. 아내는 이미 병원에 도착했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순산에 좋다고 하니 출산 직전까지 쉼 없이 움직였던 아내다. 집 청소를 하던 중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막상 터지고 보니, 별 게 아녔단 거다. 그래서 아내는 남은 빨래도 마저 개고, 샤워까지 하고선 홀로 운전하고 병원에 갔다.

일단 시작부터 뭔가 예상과 다르다. 한밤중에 진통이 와 부랴부랴 택시를 잡고, 차 안에서 아내에게 머리를 잡히는, 뭐 그런 예상가능했던 시나리오가 아니다.

병원에선 왜 바로 오지 않았느냐고 아내를 나무랐다. 이미 양수 대부분이 터졌으니 24시간 내에 반드시 출산해야 한다며 촉진 주사를 맞았다. 아이 속싸개와 몇몇 아내 위생용품을 챙기고 병실에 묵었다. 창밖에는 비가 왔다. 진통도 없으니 아이가 나오긴 하는가 싶다. 잠이 올 리 없는 아내는 눈을 감는 둥 마는 둥 했다. 난 물끄러미 비 오는 창문을 바라봤다. 아, 낯설다.

진통은 새벽에 갑자기 찾아왔다. 그로부터 14시간이 걸렸다. 무통주사를 맞을까 말까 며칠 전 아내와 진지한 격론을 벌였건만, 본 게임이 벌어지자 그런 격론은 무의미했다.

14시간의 진통.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도 아내는 “무통주사 놔주세요”라는 말만은 또렷하게 외쳤다. 아내 옆에는 두 개의 그래프가 있다. 하나는 진통의 강도, 또 하나는 아이의 상태라 했다. 양수가 없으니 쉽게 아이가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무통주사를 또 맞았다. 나중엔 의사도 고개를 저었다. “더는 무통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어요.” 의사의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그래도 아내는 계속 힘없이 웅얼거렸다. “주사 놔주세요.”

아내는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코로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고, 숨을 참고 힘을 주고. 이미 출산 전부터 분만 호흡법까지 예행연습했거늘, 아내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14시간의 진통, 아내는 때때로 정신을 잃었다. 진통과 진통 사이엔 심지어 잠까지 들었다. 잠을 자는지 정신을 잃었는지 외관상으론 구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면서도 남편의 목소리엔 또 눈을 떴다. 그때마다 또 왈칵했다.

이제 마지막 시도라고 했다. 이번마저 안 되면 제왕절개를 한다고 했다. 의사 수 명이 붙어, 한 명은 아내 위에 올라 배를 눌렀다. 또 한 명은 아이가 나올 통로를 계속 넓히려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잡아당겼다. 아내는 더는 못하겠다고 울었다. “살려주세요”라고도 했다. 혀마저 지쳤는지, 말은 계속 목으로 먹혀들었다.

14시간의 진통, 그래프를 보던 의사가 아내에게 말했다. “어머니,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14시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나오려고, 엄마 아빠를 만나려고 이 조그마한 녀석이 14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미 아내도 더는 못하겠다고 울던 그 때다.

출산 후, 아내는 출산 당시 세세한 순간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단 하나,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이 말만은 또렷이 기억난다고 한다. 난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당시 아내는 그 순간에도 정신을 잃은 때였다. 의식이 흐릿한 중에도 다시 한번 힘을 냈고, 의사의 지시에 따랐다. 아마 아내는 들었을 것 같다. 정신마저 잃은 그 순간에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말만은 들었을 것 같다. 그게 엄마인가 싶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났다. 출산의 순간을 아름답게 카메라로 담고, 동영상을 찍고…. 출산 준비물에 카메라를 빼먹지 말란 조언도 철썩 같이 듣고 챙겼지만, 나 역시 정신 줄을 놔버린 탓에 다 물거품이 됐다. 가까스로 아이와 아내의 첫 만남은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정작 아이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눈물 콧물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만 큼지막하다. 그래도 이게 바로 우리 가족의 첫 사진이다. 

출산에서 남편은 무기력하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옆에서 손을 잡고 머리카락을 내어줄 뿐이다. 출산 전, 남편이 분만실에 함께할지를 두고 찬반이 분분하다. 개인적으론 그래도 동행하길 강력히 추천한다. 비록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남편들이지만, 그 순간순간들을 함께 지켜보며 아내 대신 그 순간들을 기억해줄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4개월 뒤에도 그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고, 또 아내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참, 카메라도 꼭 챙기시길. 그리고 저처럼 정신 줄을 놓진 마시길.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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