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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광장-권대봉 고려대 교수] 핀란드식 평등과 한국식 평등
부동산| 2016-08-22 11:21
핀란드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공적기관은 경찰과 학교라는 사실을 지난 18일 글로벌교육포럼에서 헬싱키대학의 파시 살베리(Pasi Sahlberg) 교수와의 상호토론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핀란드는 소득에 비례하여 교통법규 위반자의 벌금을 부과한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벌금을 많이,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벌금을 적게 부과한다. 형평성에 방점을 찍은 핀란드식 평등이다. 한국은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벌금을 부과한다. 한국식 평등이다.

소득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려면 개개인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소득이 있는 국민은 누구나 모두 세금을 내는 곳이 핀란드이다. 근로소득자의 48.1%에게 면세혜택을 주는 곳이 한국이다. 2013년 기준의 OECD 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한국은 24.3%이고 핀란드는 43.7%이다. 세금을 핀란드만큼 내자는 이야기는 빼고 복지를 핀란드만큼 해달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핀란드식 교육평등은 학생의 능력에 따른 진로진학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9년제 기초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한 의무교육기관) 졸업자의 50%가 일반계 고등학교로, 45%가 직업기술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5%가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각 교사가 학생의 과목별 역량을 평가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결정은 기초학교 교사들이 공동으로 판정을 내린다. 판정을 학부모와 학생이 수용하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학교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고등학교 졸업자의 60%가 대학에 진학하고 40%는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일반계 고등학교 졸업자는 대학으로, 직업기술계 고등학교 졸업자는 폴리테크닉 (한국의 전문대학에 해당되는 응용과학대학)으로 진학하지만 교차진학도 가능하다.

핀란드는 고교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터로 직행한 근로자들의 직업경험을 인정한다. 전문가 자격을 부여하여 직업세계에서 인정받고 살 수 있는 멀티트랙을 운용한다. 재능이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간극을 메워서 형평성을 제고하는 핀란드식 평등이다. 일터에서 삶의 경험과 전문성을 학력과 대등하게 인정하는 것이 능력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살베리 교수가 보여준 핀란드 기초학교 4학년 학생의 하루 시간표에 의하면, 8시30분에 시작하여 45분 수업과 15분 휴식으로 다섯 과목을 오후 2시까지 수업한다. 귀가 후 30분 정도 학교숙제를 하면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다.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것은 사회성 발달에 필요하지만, 홀로 노는 시간을 가져야 창의력이 발달한다. 혼자 놀아야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어야 창의력이 발달할 수 있다는 핀란드 교육자들의 생각이 시간표에 나타난 것이다.

핀란드가 모든 교사 후보자에게 석사학위를 요구하는 것은 교실 현장을 탐구하여 학생을 개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한명의 학생이라도 낙오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핀란드에는 방과 후 사교육이 거의 없다.

한국 교실에서는 학업능력이 매우 다른 학생을 같은 반에 모아서 중간 수준으로 교육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잘하는 학생은 지루하고, 못하는 학생은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수준별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이나 학교 밖의 사교육을 찾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핀란드식 평등은 교육예산 편성에도 나타난다. 학급이나 학생 수를 기준으로 예산을 일률적으로 배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정신적 신체적 조건을 가진 학생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예산을 책정한다. 각자의 재능에 따라 수월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예산을 형평하게 사용한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 어떤 평등이 바람직한지 정부와 국회는 이해당사자들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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