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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의 대 잇는 과학기술 열정…“노벨상 받는 과학자 나올때까지 지원할 것”
뉴스종합| 2016-09-02 09:52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장사꾼의 기본은 신용과 정성이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면 누구라도 와서 살 수밖에 없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인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은 어머니 고(故) 윤독정 여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개성 남문시장 일대에서 각종 기름을 팔았던 윤 여사는 동백기름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939년 ‘창성상점’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윤 여사는 어린 아들 서 선대회장에게 일일이 좋은 동백씨를 골라낸 후 손으로 짜는 정성을 보여줬다. 아들은 ‘좋은 동백 씨앗을 구해오라’는 어머니의 분부대로 개성에서 서울 남대문 시장까지 45㎞가 넘는 길을 매일 수십㎏의 동백 씨앗을 자전거에 실어 날랐다. 그 결과 ‘창성상점’은 날로 번창했다.

1947년 서 선대회장은 가족을 이끌고 남대문시장 부근 남창동으로 거처를 옮긴 후 가게 이름을 ‘태평양화학공업사’로 바꾸고 본격적인 화장품 제조ㆍ판매업을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는 이렇게 출발했다. 

[사진=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캐리커처]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기준 매출 5조6600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1년에는 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회사가 망할 뻔한 위기를 겪었다. 아모레퍼시픽이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은 기술 투자였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은 이듬해인 1992년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가장 어려울 때 희망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과학의 발전은 희망이고, 과학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에요.”

지난 1일 ‘서경배 과학재단’ 출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서경배(53)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어릴 적 만화 ‘아톰’을 즐겨봤던 서경배 회장은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아버지 서성환 선대회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회사가 어려울 때 과학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더욱 커졌다.

서 회장은 1987년 코넬대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태평양에 입사해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했다. 1997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2013년부터는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그가 과학기술의 힘을 몸소 체감한 것은 1997년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이란 제품을 출시하면서다.

서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990년대 물건이 너무 안 팔려서 거래처에 가서 야단 맞는 것도 지겹고, 돈 빌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강한 상품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수백번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아이오레 레티놀 2500’을 만들었는데, 불티나게 팔렸죠. 정확한 함량과 산화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하고, 비타민 유도체를 화장품으로 바꿔 캡슐화하는데 기술도 필요했어요.”

이 제품은 세계 최초로 순수 비타민A인 ‘레티놀’을 안정화시킨 것으로, 주름개선 기능성 화장품으로 당시 식약청 승인을 받았다.

서 선대회장은 2003년 작고하기까지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 말은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을 이룬 근간이 되고 있다. 1954년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설립한 아모레퍼시픽은 1957년부터는 매년 연구원들을 유럽과 일본 등지로 보내 선진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등 기술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1966년 인삼 중심의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ABC 인삼크림’을 출시했고, 1989년에는 세계 최초의 녹차 화장품 ‘미로’를 만들었다. ‘아이오페 레티놀 2500’(1997년)에 이어 세계 최초의 피부노화 개선 희귀 진세노사이드화장품 원료 ‘효소처리 홍삼사포닌’ 개발(2004년), ‘아이오페 에어쿠션’ 출시(2008년)가 뒤를 이었다.

뿐만 아니라 ‘태평양장학문화재단’(1973년), ‘태평양학원’(1978년), ‘태평양복지재단’(1982년)을 잇달아 설립하며 인재양성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사진=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지난 1일 ‘서경배 과학재단’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 회장은 이날 “노벨과학상을 받는 한국인 과학자가 나오기까지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저희 회사 재단이 있는데, 전적으로 다 아버님이 주식을 출연해 만들었어요. 성공은 자기 노력도 있지만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제가 오랫 동안 갖고 있는 주식이 많은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는 바로 사람들의 도움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런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 ‘서경배 과학재단’이라는 개인적인 방식을 택했어요.”

‘서경배 과학재단’은 서 회장이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만들었다. 화장품 사업과 무관하게 순수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신진 과학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익재단이다. 서 회장은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소명을 이루는 삶’을 늘 마음 속에 꿈꿔 왔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어 만든 ‘서경배 과학재단’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오랜 꿈에 한 단계 다가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시작은 3000억원이지만 이 돈으로는 20년 밖에 유지할 수가 없어요. 제 꿈은 사업을 잘해서 1조원 규모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천외유천(天外有天)’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 밖에 또 다른 무궁무진한 하늘이 있다는 거죠. 이 말처럼 우리 신진 과학자들이 무한한 꿈을 꾸면서, 특이성과 독창성이 발현되는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몰입하는 환경을 만들 겁니다.”

‘서경배 과학재단’은 생명과학 분야의 신진 과학자를 발굴해 기초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매년 젊은 과학자 3∼5명을 선발해 과제 1개당 최대 25억원(5년 기준)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이미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수십조원씩의 금액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과학자를 지원해서 30년 후에는 뭔가 달라지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서 회장의 바람이다.

“한국도 이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성장했고, 재단에서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그런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영광이겠죠. 노벨과학상을 받는 한국인 과학자가 나오기까지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지원하겠습니다.”

서경배 회장의 대를 잇는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과 투자가 한국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한 걸음 앞당기는 계기가 될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기업인 서경배의 행보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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