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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무서워서 못가는 곳…‘노숙자 술판’ 된 어린이 공원
뉴스종합| 2016-09-05 11:37
공원 곳곳 지독한 술냄새 악취 진동
미끄럼틀·벤치 밑엔 막걸리병·소주병
아이들·주민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지난달 27일 저녁 6시, 서울 용산구의 한 어린이공원.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술냄새만 풍길 뿐 어린이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다. 미끄럼틀 아래 그늘엔 노숙인이 술에 취한 듯 드러누운 채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그네 맞은편 벤치엔 막걸리병들이 굴러다녔다. 한켠에 걸린 ‘더이상 공원의 무질서를 방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진 용산경찰서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와 씁쓸했다.

지난달 28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중랑구의 한 어린이 공원도 상황은 다를 바 없었다. 50대 노숙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상의를 풀어헤친 채 소주병을 들고 연신 고함을 질렀다. 미끄럼틀과 그네는 오래전 발길이 끊긴 듯 했고, 일대엔 담배꽁초가 나뒹굴었다. 상봉동에 사는 주연정(31ㆍ여) 씨는 “이 길로 다닌지 1년이 넘었지만 노숙자 말곤 아무도 못봤다”며 “얼마전 소나기가 오는 날도 비를 맞으면서 술판을 벌이고 있더라”고 혀를 차며 말했다.

서울시내 어린이공원에 어린이가 사라졌다. 대신 ‘술병’만 널브러져 있다. 26~28일 저녁시간 서울 시내 어린이공원 6곳을 둘러본 결과 어린이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중 3곳엔 노숙인이 술병을 품고 잠들어 있었고, 모든 어린이공원에서는 담배꽁초와 맥주캔 등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발견됐다.

서울시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어린이공원을 ‘어린이의 보건 및 정서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공원’으로 규정한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어린이공원은 모두 1105개소로 구별 평균으로 따지면 각각 44개소가 조성돼 있다.

문제는 어린이공원 중 일부가 여전히 운영미비 등으로 노숙인들의 술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와 경찰청이 지난해 말 조사한 ‘공원안전 현장점검 결과표’에 따르면 시내 어린이공원 중 안전등급 평가에 YELLOW(보통)ㆍRED(위험)를 받은 공원은 각각 381개소, 10개소에 달했다. 서울 어린이공원 3곳 중 1곳은 안전 등급이 ‘보통 이하’라는 뜻이다.

RED는 지난해 1년간 살인ㆍ강도 등 7대 범죄가 5건 이상, 주취ㆍ행패 등의 112 신고 건수가 16건 이상 발생했던 어린이공원에 붙는 등급이다. 이외에도 주민여론과 조사자 의견, 노숙인 등의 불안요인 등을 점수화해 일정 수준이 넘으면 RED를 받게 된다. 이어 YELLOW, GREEN 순으로 안전 점수는 높아진다.

한 구청 관계자는 “모든 어린이공원에서 살인ㆍ강도가 발생해 RED를 받았다고 보긴 어렵고, 이 중 다수는 음주문제로 시비ㆍ행패 등으로 인해 지정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어린이공원에서 교복 차림의 청소년 여러면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도 쉽게 발견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행청소년과 관련된 민원도 많다”이라며 “어린이공원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흡연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는 등의 제보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공원이 공원이 노숙자와 취객, 비행청소년들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숫자만 많을 뿐 시대에 떨어지는 어린이공원 구조로 지적한다.

황선영 한국놀이치료사협회 이사는 “가상현실(VR)이 떠오르는 시점에 철봉, 미끄럼틀 등 옛날 시설만 있는 어린이공원에 어린이 발길이 뚝 끊기니 노숙인 술판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이사는 “시대에 맞게 어린이공원도 각종 시설과 안전장치를 둬 아이들의 호응을 이끌어야 한다”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용산구의 한 공원 관계자는 “경찰이 아닌 이상 노숙인들이 어린이공원에서 술ㆍ담배를 들고와도 신분증이 없다는 등 우기면 단속을 하기 쉽지 않다”며 “과태료를 물리기는커녕 말이 안 통해 계도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놨다.

한편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 관계자는 “어린이공원 안전을 위해 등급별로 순찰 횟수를 달리하고 방범초소를 세우는 등 대책에 나서고 있다”며 “범죄예방도시디자인(CPTED)도 도입 확대를 검토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문규 기자ㆍ이원율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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