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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 탁자 밑에 숨을까? 뛰쳐나가야 하나?...지진국가연합이 밝히는 지진대피요령
뉴스종합| 2016-09-13 10:43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한국에는 대피 안내방송이 안 나갔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12일 오후 7시 44분과 8시 32분 경 경북 경주시 인근에서 5.1의 전진과 5.8의 본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연락을 준 지인이 말했습니다. 일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재난청과 고층건물이 많은 뉴욕 시에서조차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은 일단 단단한 탁자나 책상 밑에 숨고 방석이나 베개로 머리와 목을 보호하라고 합니다. 일본에 목조건물이 많아서 단순히 탁자 밑으로 숨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지진다발국가의 시민단체 등이 결성한 연구단체인 ‘지진 국가 연합’(NEA)가 밝히는 지진대피요령 [사진=NEA 홈페이지 캡쳐]

미국 국토안보부와 캘리포니아 주와 지진빈발국가의 연구단체 등이 제휴한 지진 국가 연합(ECA)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피하는 것보다 튼튼한 탁자나 책상 밑으로 숨는 것이 안전하다”라고 밝힙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붕괴해 사망할 확률보다 지진 때문에 깨진 유리창이나 벽돌 등에 지나가는 행인이 맞아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로빈 스펜스와 에밀리 서 캠브리지 대학교 지질학과 연구팀과 찰스 스카스론 교토대학교 교수가 2011년 발표한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 공동연구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포함한 선진국가에서 규모 8 이하의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붕괴해 사망자가 발생할 확률은 15%도 안됩니다. 오히려 사상자의 대다수는 깨진 유리창이나 떨어진 벽돌조각 등 지진으로 인해 주변에 떨어진 물체에 맞으면서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고층건물이 많은 뉴욕 시에서조차 지진이 발생하면 일단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은 안전한 책상이나 탁자 밑에 숨어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건물 붕괴로 인해 사망 위험이 높은 국가는 아이티, 네팔 등 개발도상국이거나 안전설계가 낙후된 국가들이 많았습니다. 이 국가들의 경우 지진이 발생하면 무조건 밖으로 대피하라고 권고합니다. 네팔이나 아이티에서 ‘밖으로 대피하라’라고 권고하는 것은 건축물이 붕괴하더라도 행인들의 부상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선진국가들의 경우 ‘건축물이 붕괴할 위험보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다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도 건물이 없는 공터로 대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건물이 없는’ 공터라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환경에서 지진 발생 이후 1분 이내 건물이 없는 공터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일본과 미국, 이탈리아의 경우 지진 발생 80초 안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80초 안에 공터로 이동하거나 안전한 탁자 밑으로 숨어있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일 오후 7시 44분과 8시 32분 경 경북 경주시 인근을 강타한 지진으로 발생한 피해 사진 [사진=트위터리안 ‘긍정왕 불뱅’이 올린 사진 캡쳐]

 한국의 아파트들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밖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건물 붕괴로 인해 날아드는 파편들에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내진설계가 약해 붕괴위험이 있으니 밖으로 대피하라”는 것은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아이티나 네팔 등 개발도상국가 수준으로 내진설계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진 발생 도중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는 이미 SNS 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앙지와 가까운 경주의 시민들은 트위터를 통해 지진의 피해를 알렸습니다. 트위터에는 길거리로 떨어진 유리조각들과 건물 파편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의 경우 규모 6~7을 견딜 수 있는 지진방지용 유리를 사용합니다. 유리창이 무분별하게 깨질 경우 부상자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만 보더라도 한국의 일부 건물들은 지진방지용 유리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진 발생 이후 80초. 이 80초 사이에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인명피해 규모가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네, 여진의 경우 건물이 없는 공터로 대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80초 사이에 건물이 없는 공터로 대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튼튼한 탁자나 책상 밑으로 숨는 것이 안전합니다. 책상 다리나 책상 밑의 벽 등 고정된 물체에 기대는 것도 좋습니다. 이것은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도 권하는 지진대피요령입니다. 

 지진이 잦아든 뒤 여진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본과 미국, 이탈리아 등 지진다발국가에서는 경찰과 공공기관, 지자체가 나서서 시민들을 지진대피소로 안내합니다. 특히 강진이 발생했을 경우, 문자나 인터넷, 그리고 지진긴급대피방송을 통해 대피소 안내를 실시합니다.
  이때도 선진국가들은 '지진이 났을 때 이동하지 않고, 멈췄을 때 신속하게 대피한다'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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