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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 유행처럼 번지는 기업분할설...“가능성 없지 않지만 설익었다”
뉴스종합| 2016-10-21 08:06
[헤럴드경제=윤재섭 기자]삼성전자의 인적분할 가능성을 제기했던 증권가에서 이번엔 SK텔레콤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너경영인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효율화, 기업가치 제고 차원의 다양한 기업분할 시나리오가 증권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덕분에 당해 기업 주가는 올랐다. 기업분할 여파가 미칠 계열사 주가도 오름세를 탔다. 하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진 못했다. 당해 기업 측의 반응과 무관치 않다.

분할 대상으로 거론됐던 기업들은 이러한 증권가 분석과 전망에 대해 “당혹스럽다”, “가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근거없는 설에 불과하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분할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기업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부적으로 아직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분할 직전에 풀어야 할 안팎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다. 분할은 필연적으로 지배구조의 변화를 수반한다. 기업 입장으로선 기존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기업분할을 택할 리 없다. 지배구조를 안정화할 장치를 마련할 때까지 분할을 미루고자 한다. 같은 맥락에서 기업들은 아직 분할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분할 효과보다는 분할 비용이 더 많이 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분할 시나리오 왜?=증권가에서 다양한 기업 분할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증시에 별다른 모멘텀이 없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린다. 증시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만한 재료가 부족해지면서 생겨난 흐름이란 지적이다. 세계적인 불황 여파로 일부 기업을 제외하곤 좀처럼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바이오, 화장품, 신재생에너지 등 그동안 증시를 데어왔던 각종 재료들 역시 시들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시전문가는 “침체된 증시에 재료가 될만한 것이 많지 않다. 대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를 가정한 기업분할 방안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여소야대 정국과 각종 경제민주화법안 발의를 우려하는 재계가 서둘러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마무리지으려 할 것이란 관측도 기업분할 시나리오 양산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국회엔 회사가 분할할 경우 분할하는 회사가 보유하는 자사주에 대해 분할된 신설회사의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회사 자본인 자사주를 활용해 대주주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로 발의된 법안이다. 이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있든 없든 간에 이런 법안 발의에 불안을 느낀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서두를 수 있다는 가정이 기업분할 시나리오를 낳게 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분할, 왜 설익었다 할까=현대증권은 최근 SK와 SK텔레콤이 분할ㆍ합병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현행 규제에 따라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기업을 인수하려면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해, 인수합병(M&A)이 어렵게 된다는 점을 들어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하이닉스를, SK텔레콤과 동급의SK 자회사로 만드는 지배구조 변화를 택할 것으로 점쳤다. 현대증권은 그러면서 SK텔레콤은 통신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고, SK하이닉스는 M&A 규제에서 벗어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는 분할 효과를 강조했다.

하이투자증권도 최근 SK그룹의 연례 CEO 세미나에서 한 임원이 중간지주회사 도입을 하나의 아이디어로 제시한 것에 착안,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SK텔레콤을 투자부문(가칭 SKT홀딩스)과 사업부문(SKT사업)으로 인적분할하면 SK의 자회사로 SKT홀딩스가 자리잡고, SKT홀딩스는 자회사로 SKT사업, SKT플래닛, SK하이닉스 등을 거느리게 된다는 가정이었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나름 의미있는 분석이지만, 지주회사가 되려면 공개매수를 통해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해 비용이 만만찮다”며 ”SK텔레콤을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기보다는 분할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시 전문가도 “SK의 가장 유력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은 SK텔레콤을 사업회사와 SK하이닉스 지분(20.7%) 및 자사주(7.6%)를 보유한 투자회사로 분할하는 방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다만, 현재 SK와 SK하이닉스 주가 수준을 고려할 때 당장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SK가 SK하이닉스를 손자회사가 아니라 자회사로 두려면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 20.7%를 넘겨받는 대신 스왑거래(지분 맞교환) 등을 통해 SK텔레콤에 반대급부의 자산을 내줘야 한다”면서 “현재가치로 하이닉스 지분 20.7%를 인수하는데 6조원 가량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지불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가능한 대안으로는 SK가 보유한 자사주(20.6%)를 내주는 것인데, 자사주의 현재가치가 3조3000억여원에 그친다.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SK 주가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올라야 가능한 거래라는 얘기다.

또 다른 전문가는 “SK하이닉스를 SK 자회사로 두기 위한 기업 분할 및 합병 방안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대주주의 지분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SK텔레콤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나중에 이 투자회사를 모회사인 SK와 합병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럴 경우 SK의 대주주인 최태원 회장 일가의 지분(30.86%)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예상되는 기업분할이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이 같은 문제를 들어 현대증권은 SK에 대해 향후 2~3년이 지나야 인적분할이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앞서 하이투자증권 등은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투자회사와 반도체, 가전, 휴대폰 사업을 근간으로 하는 3개 사업회사등 4개 회사로 분할할 경우 기업가치가 올라갈 것이란 분석이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도 마찬가지 이유로 삼성전자 측에 기업분할 방안을 검토해 달라는 당부의 서신을 전달해, 삼성 측으로부터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답을 얻어낸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분할하려면 이에 앞서 이건희 회장이 보유중인 삼성전자 주식(지분율 3.54%)의 상속 또는 증여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ㆍ이서현 사장 등의 재산분할과 사업권 조정 문제도 분할 직전 고려할 문제로 거론된다.

때문에 증시에선 삼성전자 분할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하더라도 이같은 여건이 갖춰지려면 최소 2년은 걸려야 한다는 전망을 내리고 있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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