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
외로움에 말문 닫고 쏟아내는 상처많은‘이상한’ 고모와 조카
라이프| 2016-10-21 11:12
고모와 조카가 30년만에 만났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메시지에 조카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부리나케 달려온다. 조카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고모의 유산이다. 오늘 내일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고모는 4계절이 지나도록 멀쩡하고, ‘언어를 잃어버린’ 고모 덕택에 혼자 떠들던 조카는 폭발하기 직전이다.

노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원제:vigilㆍ임종·사진)’가 내달 22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공연된다.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다. 



‘고모를 찾습니다’는 총독문학상을 두 차례나 받은 캐나다의 대표 작가 모리스 패니치가 1995년에 쓴 2인극 작품이다. 전통적 블랙 코미디로, 그동안 26개국에서 무대에 올려졌으나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19년 전의 작품이 한국관객과 소통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데는 작품 속 현실이 지금 우리사회와 너무 닮아있어서라는게 연출을 맡은 구태환씨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거울삼아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제 ‘추석 선물 배송하던 택배기사가 시신을 발견했다’거나 ‘우편물이 몇 달째 쌓여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미 죽어있었다’는 소식은 뉴스에서 크게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1인가구 비율(27.2%)이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형태가 됐다. 이중 44%가 60대 이상 노인이다. 고령화와 고독사는 한국사회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인 셈이다.

제목이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 구태환 연출가는 작품의 제목을 ‘임종’에서 ‘고모를 찾습니다’로 바꾼 것은 ‘고모’가 갖는 의미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엄마ㆍ외할머니ㆍ이모 등 모계에서 길러지는 전통이 있는데 서양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먼 친척인 고모의 임종을 조카가 맞이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함의나 메시지도 그렇지만, 작품 자체로도 흥미롭다. 2인극이지만 사실상 1인극인 작품이다. 고모는 외로움에 지쳐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고, 이런 고모의 빈 부분까지 조카가 채우는 설정이다.

고모 그레이스역을 맡은 배우 정영숙은 “침묵의 연기가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외롭고 소외된 삶을 살면서 침묵으로 대응하는 할머니를 연기는 기본으로, 대사없이 교감을 표현하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녀의 몫이다.

조카 켐프역의 배우 하성광은 “사실상 1인극이라 대사의 양도 방대하다”며 “이제 겨우 대사를 넘어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씨는 조카를 “유년기부터 상처가 많고 내면이 복잡해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두 외로운 영혼의 만남이다. 한쪽은 너무 외로워 ‘언어’를 잃어버렸고 한쪽은 허무맹랑한 ‘언어’로 외로움을 채우고 싶어한다. “우울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구요…화장으로 해드려요?”라는 캠프의 대사들은 죽음이라는 금기를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마주한다.

구태환 연출가는 “작품 자체가 어두운 이야기를 정반대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 그런 점을 더 강조해 연출했다”며 “빠른 템포로 유쾌하게 연출해 관객들의 체감시간이 짧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원작이 가진 리듬감은 극대화 시키고,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친밀한 우리 감성이 담긴 ‘구태환표 휴먼 코미디’가 기대된다.

입장권은 지정석(1층) 5만원, 자유석(2~3층) 3만5000원이다. 프리뷰(11월 22~24일)와 문화가 있는 날(11월30일)엔 각각 50%, 30% 할인한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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