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현장에서] 예산 볼모 잡는 與野의 패러독스
뉴스종합| 2016-10-24 11:15
역설(逆說ㆍParadox)이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겠다’던 여야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나라의 곳간을 볼모로 삼았다. 새누리당은 지난 19일 열린 2017년도 예산안 토론회 공식 자료에서 ‘야권의 법인세 인상 추진을 막기 위해 예산안 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예산안 자체가 부결되거나 정부의 증액 부동의로 처리되지 못하면 정세균 국회의장이 법인세 인상안을 세입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도 효력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야당 역시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거야(巨野)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겠다는 의지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원내대표)는 같은 날 열린 최순실 게이트ㆍ편파기소 대책위원회의에서 “정치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야당이 가진 카드는 내년도 예산안 심의밖에 없다”면서 “의혹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했다. 국정감사에서 미르ㆍK 스포츠 재단의 거액 모금을 둘러싼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만큼, 향후 예산안으로 정부ㆍ여당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여야가 모두 정국 주도권 확보의 핵심 전략으로 ‘예산안 발목 잡기’를 공론화한 셈이다. 문제는 이 싸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점이다. 법인세 인상을 막으려는 여도, 대통령 측근(우병우 민정수석 등) 비리의 끝을 보겠다는 야도 예산안 처리 지연이 두렵지 않다면, 이 공방전은 결국 정략적 차원의 이득조차 없는 ‘무의미한 블랙홀’이 될 공산이 크다. 그로 인한 고통은 경기침체의 파고에 고스란히 노출된 국민의 몫이다. 눈과 귀를 닫고 정쟁에 빠진 여야가 만들어낸 예산안의 역설이다.

예산안은 여야의 세 과시 수단이 아니다. 조선ㆍ해운산업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서민의 밥그릇이자, 자연재해에 삶터를 잃고 떠는 피해자들의 내일이다. 후발주자의 추격과 선진국의 질주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거름이다.

여야가 특정 사안에 매몰돼 전체 예산안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답은 이미 나와있다. “예산안 심의는 우리 국회가 ‘일하는 국회’로 거듭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가 되자”. 정 의장이 여야에 남긴 당부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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