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프리즘] 보험,연금저축 해지 최고치…무너진 서민경제
헤럴드경제| 2016-10-27 11:02
보험 취재를 담당하다보니 누구를 만나든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보험 얘기다.

한데 최근 만난 사람 중 2명으로부터 보험 계약을 해지 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명은 “전세값이 너무 올라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으다 보니...”라고 했고, 또 한 명은 “돈 들어 갈 데가 많아서 당장 급하지 않은 보험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 뿐이 아니었나 보다.

최근 나온 통계에 따르면 보험 해지 규모가 올해 최대치를 갱신할 전망이다.

6월 말 현재 25개 생보사(9조7400억 원)와 16개 손보사(4조9900억 원)가 고객에게 지급한 해지환급금이 14조7300억원 이라고 한다. 전년(14조600억원) 동기 대비 6700억원(4.8%)이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보험 해지환급금은 지난해 기록을 깨고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울 전망이다.

보험을 해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중도 해지는 무조건 손해다. 손해를 감수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가 힘들다는 방증이다. 마지막 보루인 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는 가계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에 비해 금리가 높은 보험사의 대출도 두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급전을 빌리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뿐이 아니다. 노후를 대비해 가입하는 연금저축 해약도 최고 행진을 이어갔다.


작년 한 해 계약 해지한 연금저축은 33만 건, 액수로는 2조5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이나 연금저축 같은 상품은 만일의 위험과 노후에 대비한 것이다. 당장 오늘을 살기도 힘든 우리네 서민의 상태를 드러내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어온다. 이렇듯 서민경제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라는 폭탄이 터졌다.

최순실 게이트는 몇일 전만 해도 발등에 떨어진 불로 지목됐던 주택담보대출, 가계부채, 서민경제 위기 같은 심각한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 삼켜 버렸다. 심지어 그동안 내놓았던 경제 대책에도 이 분(?)의 손길이 미쳤던 게 아닐까라는 의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정권 출범 직후 추진된 ‘부동산 살리기 정책’ 등이 2011년부터 이어진 가계부채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작금의 사태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뒤늦게나마 내놓은 주택공급 물량 축소를 주요 내용으로 한 가계부채 대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깊은 수렁으로 잡아 끌었다는 평마저 나온다.

경제는 엉망인데 가계부채는 폭증했고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서민경제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다들 “서민이 무너진다. 진짜 위기다”라고 목청 높여 소리치는데 정작 내놓는 대책들은 무능의 한계만 드러내고 있다.

정치부 기자들이 검찰을 대신해 최순실 의혹을 파헤쳐 진실을 밝혀 낸 것처럼, 금융부 기자들도 서민경제를 수렁에서 꺼내 줄 해법을 찾아나서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hanira@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