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세상읽기] 살둔 마을축제가 주는 의미
뉴스종합| 2016-10-28 11:04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 위치한 살둔마을은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다. 그런 산골마을에 며칠 전 도시민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 곳에서 열리는 ‘미각의 추억’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해발 700m의 지형적 특성을 살려 고랭지 명품 채소를 재배, 공급하는 마을 주민과 이를 소비하는 도시 회원이 매년 한 차례씩 만나 서로의 고마움과 정을 나누는 자리다. 넉넉한 산골 인심과 깊어가는 가을 정취가 한데 잘 어우러진 훈훈한 잔치한마당인 셈이다.

1980년초까지만 해도 이 마을은 분교가 들어설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도시화 물결이 밀어닥치고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농토는 하나 둘 외지인의 손에 넘어갔고, 마침내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기고 말았다. 유일한 희망인 분교마저 문을 닫아 마을은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하지만 이른바 로컬 푸드(Local food)사업을 매개로 한 마을공동체 활동이 일부 성과를 내면서 마을은 재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캠핑 등 레저 수요층은 물론 귀농ㆍ귀촌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간 수 천명의 방문하고, 덩달아 농가 소득도 증가 추세다. 닫혀있던 ‘동네 슈퍼’도 다시 문을 열었다. 3.3㎡당 수십만원을 웃돌 정도로 오른 땅값도 반갑지만 무엇보다 마을에 생기가 돌게 된 게 고무적이다.

최근 지체별로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다양한 주거서비스를 도입해 지역 주민간 협업과 상생을 적극 도모한다는 게 그 취지다. 도시지역의 경우 구도시 재생사업이 화두가 돼 재건축, 재개발 등의 정비사업이 활기를 띠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련 지원예산도 수십조원대로 급격히 불어났다. 압축 성장과 대규모 개발 탓에 무너진 지역커뮤니티를 회복시켜 분열과 불신, 이기주의 폐해를 치유하기 위함이다. 일본 등 선진 외국의 경우 기업까지 가세해 스노우 피크(Snow Peak)같은 글로벌 레저 브랜드를 탄생시킨 사례도 있다.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획일화된 주거 문화를 감안하면 마을 공동체 회복은 늦은 감이 없지않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인프라를 닦고 예산이나 행정 지원식으로 풀어갈 문제가 아니다. 마을회관 짓고 농사 종잣돈 몇 푼 준다고 마을공동체가 회복되고 농촌이 되살아 나지는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에 100조원 넘게 쓰고도 성과는 거의 없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산업의 융복합화가 빠르게 진행되듯 마을공동체를 살리고 낡은 도시의 효과적인 재생을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 주체들이 참여해 흡인력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동력을 경제와 일자리로 연결해 공생하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전략이 절실하다. 천문학적 예산을 퍼붓으면서도 전혀 나아질 기색이 보지 않는 농촌문제도 마찬가지다.

가을 단풍은 더 이상 생장을 포기한 나무들의 비장함을 알리는 신호이자 이듬해 회생을 위한 슬픈 의식이다. 시간을 연장하는 식의 재생이나 회복, 지원은 일과성에 불과하다. 일년에 한번 초침이 움직이고 백년에 한번 알람이 울리는 런던 대영박물관의 영원 시계처럼 후대까지 길게 내다보는 지혜가 동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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