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세상속으로] 최순실이 만든 ‘상실의 시대’
뉴스종합| 2016-11-02 11:12
최순실 사태가 상징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도 아니고, 최순실이란 일개 국민에 의해 예산이 왔다 갔다 했다는 그런 의혹도 아니다. 최순실이 한 일은, 우리 국민이 정부라는 이름의 시스템에 대해 가졌던 신뢰를 송두리째 앗아 간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앗아간 것은 가장 큰 죄라고 할 수 있다. 신뢰는 사회 자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이다. 그 이후 잠시 사회자본이라는 용어는 사회과학에서 사라지는 듯하다가, 푸트남과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에 의해 다시금 재조명을 받게 됐다.

사회자본이란 용어는 사용하는 이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그 중심에는 ‘사회적 신뢰’가 있다는 사실엔 일치한다. 사회자본이 튼튼한 국가는 사회적 신뢰가 뿌리 깊고, 그래서 제도와 체계가 잘 작동한다. 반대로 사회적 자본이 약한 국가는 제도와 체계가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튼튼히 하려면 사회자본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신뢰가 뿌리 내리게끔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 그런 노력을 해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 사회를 몰아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사표가 수리되긴 했지만, 청와대 수석들이 의혹의 핵심에 등장하고, 대통령마저 일개 국민에 불과한 최순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함으로써 우리 국민은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정치학을 30년 넘게 전공한 나로서도 그동안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때, 일반 국민이 가지는 절망감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금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국민이 현재 정부와 청와대를 향해 가지는 감정은 이미 분노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선 ‘분노’란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는 상태이지만, 분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런 기대감마저 사라지게 되고, 그래서 ‘우울’과 ‘무력감’이 감정을 통째로 지배하게 된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상태가 바로 이런 우울과 무력감,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절망감’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쉽게 타개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가 비서진 개편을 한다고 해서 사회적 무력감과 우울감이 극복될 린 만무하다. 또 검찰의 수사가 아무리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국민의 이런 감정을 추스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국민은 이미 저마다 마음속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런 국민의 마음을 청와대는 모르는 것 같다는 데 있다. 우리는 그동안 청와대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말들을 많이 했는데, 인제 와 보니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 능력은 소통의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소통하라고 하면 그게 될 리가 없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국민과의 공감 능력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나 청와대가 무슨 조치를 내려도,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이유는 지금처럼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정부와 청와대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은 경우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국민이 상당수다. 이런 상황을 청와대가 안다면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야 정상인데….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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