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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엔 무조건 항생제 처방?…항생제 공화국 언제까지
라이프| 2016-11-16 11:23
항생제 바로쓰기 운동본부
항생제 내성·올바른 사용법 홍보
박테리아 감염은 항생제 치료대상




3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주부 김 모씨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아이와 소아과를 찾는다. 감기를 달고 살다시피 하는 아이 때문이다. 낫다 싶다가도 어린이집에만 가면 콧물과 기침을 반복하다보니 김 씨는 아이에게 식사 후 약 먹이는 것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일선 소아과에서 처방하는 감기약에는 거의 예외없이 항생제가 들어가있다. 문제는 항생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생기는 ‘내성’이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 결국 기존 감기약도 잘 안듣게되고 이를 위해 또 다른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게속 약이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보건당국이 최근 이같은 항생제 오남용을 낮추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항생제 처방률을 낮추기에 앞서 항생제 사용 필요성에 대한 검사, 강한 약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인 ‘감기’엔 항생제 불필요=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부터 매년 11월 셋째주를 ‘세계 항생제 인식 주간’으로 정하고 나라별로 항생제 내성 예방 캠페인을 벌이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항생제 내성의 심각성과 올바른 항생제 복용법을 알리기 위한 ‘항생제 바로쓰기 운동본부’를 발대하고 14일부터 일주일간 ‘항생제는 감기약이 아닙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73.3%에서 2015년 44%로 감소추세에 있지만 호주(32.4%), 대만(39%), 네덜란드(14%)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특히 소아 외래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은 75%로 아직까지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편이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최초로 소아의 ‘급성 상기도 감염(감기)에 대한 항생제 사용지침’을 개발해 이를 소아과 및 이비인후과 등에 배포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감시과 관계자는 “우선 항생제 처방이 많은 소아의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고 내년에는 성인 호흡기감염 및 소아 하기도 감염 항생제 사용지침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질병 관리본부가 개발한 지침의 급성 상기도감염에는 ▷감기 ▷급성인두편도염 ▷급성부비동염 ▷크룹과 급성후두염 ▷급성후두개염 등이 포함된다.

이 중 바이러스 감염인 감기의 경우에는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또 다른 바이러스 감염인 크룹과 급성후두염에도 항생제를 쓰지 말라고 하고 있다. 반면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인 급성인두편도염, 급성부비동염, 급성후두개염 등의 경우에는 항생제 치료대상으로 지침을 줬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런 지침 등이 담긴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2015년 대비 항생제 사용량 20% 감소, 급성 상기도 감염 항생제 처방률 50% 감소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상황에서 항생제가 필요없는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에는 항생제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항생제 처방률 낮추기 앞서 정확한 진단 시스템으로 선별이 우선=하지만 일부 의료진들은 항생제 처방을 낮추는 목표에 앞서 제대로 된 진단 시스템으로 항생제 처방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선별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물론 감기에는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이 좋지만 진료현장에서는 증상만으로 감기인지 아니면 항생제를 꼭 써야하는 급성후두개염 등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며 “이런 경우 검사를 통해 항생제 사용 유무를 결정해야 하는데 무조건 항생제 처방률을 낮춰야 한다고 지침을 내리면 항생제를 쓰지 않아 발생하는 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진료를 본 의사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즉 항생제가 필요한 질환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사가 실시되는 시스템이 먼저 정착돼야 이런 지침이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키트로 검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도 대기자가 많은 소아과 진료 현장에서 시간이 드는 이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며 “그럼에도 검사 비용 등은 수가로 지원되기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기는 초기에 잡아야”…‘센 약’ 지어달라는 소비자 인식도 바뀌어야=항생제 처방률을 낮추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감기는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세게 약을 지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외국에 비해 의료비용이 낮아 접근성이 높은 한국은 아무래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첫 지침이어서 보완할 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까지 급성 상기도 감염에 대한 항생제 사용 지침이 없었던 상황에서 첫 발을 내디딘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며 “이번 지침이 계기가 돼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고 항생제 내성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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