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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C간다]1000만 서울시민의 '끝'이 모이는 곳, 하수처리장을 가다
HOOC| 2016-12-03 12:08
<디지털, 모바일 온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아직 디지털 콘텐츠는 1도 잘 모르는 기자들이 일하는 미디어 랩 HOOC. [HOOC간다]는 평범한 소재에서부터, 희한한 대상까지, 색다른 관점과 디지털 문법으로 공감을 전하는 HOOC의 체험 콘텐츠입니다.>

[HOOC=손수용 기자, 한상혁 인턴]하수(下水), 하수도로 버려지는 물.

음식물찌꺼기와 식용유, 세제는 물론, 화장실의 소변, 대변 등 인간이란 존재가 살아가면서 내뿜는 모든 오염물질을 말한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고 있는가?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민의 1일 1인당 생활하수배출량은 평균 434리터에 달한다. 이 거대한 쓰레기(폐기물)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 걸까?

다소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이번 기획은 시작됐다.(그때는 몰랐다. 이 경솔했던 궁금증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단 3시간만에 맛보게 되는 경험의 단초가 될 줄.)


지난달 2일 찾은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탄천물재생센터. 서울에 4개의 센터가 있는데 이곳은 강남구와 송파구, 서초구에서 나오는 하수를 처리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이곳은 우리가 쓰고 버린 물을 깨끗하게 처리해 하천으로 되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78만 서울 시민이 일상적으로 버리는 생활하수. 그 것을 처리하는 하수처리장에서는 아직도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기자가 바닥에 남은 침전물(폐수 찌꺼기)를 긁어내는 모습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12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공간을 보며 그 크기에 한번 놀랐고 이 곳 어딘가에서 내가 해야할 일이 무언지 상상하면서 또 한번 놀랐다.

입구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발 한발 무겁게 옮기며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자를 맞이하는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버릴 옷은 가지고 오셨죠?”

버릴 옷도 가져왔고 마음도 어느정도 비우고 왔다고 대답했다. 잘하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직원은 친절하게 당일 일정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오전엔 센터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오후부터 본격적인 체험을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마침 이날은 수서초등학교 학생들이 이 곳에 견학을 와있었다. 그들과 함께 한 덕분에 굳이 알고 있지 않아도 될 정보도 알 수 있었다. 어린 학생들은 직원에게 청문회를 방불케하는 질문을 쏟아냈다. 
뒷모습에서도 근심이 느껴진다
“오늘 화장실에서 싼 똥이 이 곳으로 오는 건가요?”, “하루에 이곳에서 처리되는 양이 어느 정도인가요?”, “냄새가 왜 나는 건가요?”

질문의 답이 이어졌다. 당일 싼 ‘그것’들도 이곳으로 올 수 있으며 ‘그것’을 포함한 하수들이 하루에 무려 73만톤(2015년 기준)이나 이곳을 거친다고 했다. 냄새가 나는 이유는 여러분이 상상하고 있는 그 이유가 맞다.

답변이 이어질수록 내 표정은 어두워졌다. 초점잃은 나의 표정을 보고 직원이 다가왔다. 

“오전 일과는 끝났고 식사 후에 ‘최초침전지’에서 뵙도록 할게요.” 순간 ‘최초심정지’로 잘못 알아들었다.(사실 설명을 들으면서 심정지가 두어차례 올 뻔했다.)
이때까지 영화 속 설경구와 같은 심정이었다.


최초침전지는 하수처리과정의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는 단계다. 하수처리는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큰 덩어리들이 걸러지는 침사지를 거친 이후 최초침전지로 하수가 보내진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게 설명하면 잘게 부서져 들어온 온갖 이물질들을 가라앉히는 곳이다. 이 곳에 내가 들어간다!

식사를 같이 하자는 직원의 제안을 뿌리치고(김영란법 때문만은 아니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메뉴는 카레로 정했다. 그날따라 카레색이 거무튀튀해보였지만 남김없이 비워냈다. 의지를 다잡는 나름의 의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최초침전지로 이동했다.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맡았던 익숙한 냄새가 가까워짐에 따라 맞게 이동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예정된 작업시작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했다. 과연 이 작업을 하는 직원분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앞서 준비한 ‘버릴 옷’으로 갈아입고 직원들을 기다렸다. 멀리서 걸어오는 직원분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었다. 
과묵한 직원분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복장을 착용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장갑을 두개씩 장착(?)했으며 마스크와 안전모를 썼다.

옆에서 같이 장비를 차고 있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좀 서운했다. 후에 들은 얘기였지만 작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업이 끝난 뒤에는 나를 팀원으로 인정해줬다.

한 직원이 작업은 지하(?)에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진행된다고 설명해줬다.

이 파이프로 하수가 들어오고 바닥에 슬러지(하수처리 또는 정수과정에서 생긴 침전물)가 가라앉는다. 이때 밑으로 가라앉은 것들을 기계가 쓸면서 파이프 끝에 위치한 농축기로 이동시킨다. 이 작업을 하는 기계가 간혹 바닥과 레일에 달라붙은 슬러지로 인해 고장이 나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달라붙어 있는 슬러지를 제거하는 일을 해야한다.

예전보다 설비들이 자동화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동화된 기계가 고장나면 결국 보수하고 수리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하는데 계속해서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는 아쉬움이었다. 현재 팀의 막내가 38살이다. 

설명을 듣자 이곳으로 날 보낸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에 화장실을 유난히 자주 드나들던 선배다.

안으로 내려가기위해 파이프 덮개를 열었다. 



“으...윽”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코를 막고 물러서는 모습을 본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고농축된 메탄가스가 가득합니다. 냄새 때문에 기절할 수 있어요. 어지러우면 참지말고 탈출하세요.”

얼마 전 화성에서 메탄가스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인류는 화성 탐사가 한참이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탐사를 포기하라.

직원의 말에 코로 숨쉬는 것을 포기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과연 어느 정도길래 하는 호기심에 잠시 후각을 가동했다. 점심 때 먹은 카레까지 치울 뻔 했다. 굳이 표현한다면 동치미 한사발을 마시고 사흘정도를 참았다가 뀐 방귀보다 2억배는 더 독하다고 해두자.

인류가 코뿐만 아니라 입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축복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가슴 한켠에서 이곳을 작업하는 직원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솓아났다. 밑으로 내려가는 사다리에 한명씩 차례로 내려갔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요원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멋있었다.



직원들이 다 내려간 후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다신 올라올 수 없다는 생각이 스치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참으로 아름다운 지구다.

“푸욱!”

첫발을 내딛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촉에 화들짝 놀랐다. 달 표면에 인류의 첫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이 떠오른 건 기분 탓이겠지. 



작업장에는 삽과 밀대가 놓여있었는데 어떤 것을 골라야하나 엄청난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밀대를 골랐다. 그리고 내가 한 고민이 의미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이점이라면 하나는 끊임없이 밀고 하나는 끊임없이 푼다는 점이었다. 



밀대로 시종일관 힘차게 쌓여있는 것들을 슬러지 농축기 쪽으로 밀어냈다.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바닥에서 무엇인가 튀어올랐다. 복싱을 3년째 수련하고 있다. 회피능력도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방팔방에서 튀어오르는 조각들을 피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론 불가능했다. 그나마 얼마 전에 장만한 새 안경을 벗고 내려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극적으로 나에게 오는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으로 쭈뼛대고 있는데 겉옷을 벗고 일을 하는 직원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이 들어간 5명의 직원분들 모두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무엇이 튀어오르든 말든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이 공간을 더럽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업이며 일상이었다.



냄새를 제외하고도 작업환경은 순탄치 않았다. 자동화 기계를 위해 설치해놓은 장치들이 도리어 직원들의 작업을 방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깔린 레일을 피하면서 작업을 해야했다. 이런 작업을 많게는 일주일에 3~4번씩 한다고 한다. 대단하고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작업은 3시간 정도 이어졌다. 고작 3시간동안 진행된 작업에도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오늘은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어요.” 어깨를 툭 치며 가볍게 던진 직원의 말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업을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향한 곳은 샤워실이었다. 이 곳에서 모든 걸 까놓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름이 가장 힘들죠. 냄새 때문에 저희도 고생이에요”

이들에게도 냄새는 작업에 가장 힘든 ‘적’이라고 한다.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침전지의 뚜껑을 열어 환기를 시키곤 하는데 이때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만약 악취로 인해 문을 닫고 작업하게 되면 안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의 환경은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지속적인 관리를 하곤 있지만 인근 주민들이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한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사람들이 흔히 자동화되면서 사람 손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결국 기계를 점검하고 설비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일의 양은 비슷한데 자동화를 이유로 인력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여러모로 작업을 하는데 힘든 점이 많아 보였다. 

함께 일한 탄천물재생센터의 수처리1과 직원들
얼마 전 황제노역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단 하루 노역을 통해 몇 백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탕감받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소식이었다.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작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단순히 어렵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사회에 싸 놓은 똥들을 자신들이 직접 치우게 할 필요가 있다. 필요로 하는 곳에서 올바르게 쓰이는 것이 참된 노동의 가치일테니까.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계시는 수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기사를 마치며 당부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음식물 쓰레기는 변기말고 정해진 위치에 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기타 이물질 역시 변기에 넣지 마시고 정해진 곳에 버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feelgo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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