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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단상]②상자 안의 스포츠
뉴스| 2016-12-09 13:46
[헤럴드분당판교]운동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믿기진 않겠지만 정말이다. 몸 쓰는 일과는 완전 담을 쌓았다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에게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 "운동을 못 하시는 게 아니라 잘 하는 운동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거예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운동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축구, 농구, 배구, 야구, 달리기, 수영, 레슬링, 테니스, 탁구... 아직 못 찾았는가? 괜찮다. 운동은 이게 다가 아니니까. 잘 하는 운동을 찾으려면 알고 있는 운동 중에서 찾으면 안 된다.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이건 무슨 말?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려 드린다.

◇사소한 작은 동작이 흥미로운 스포츠로 탈바꿈하다
우리는 운동에 대해 너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운동'하면 사람들은 헬스장의 기구나 올림픽 종목을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운동은 창조된 것이다. 스포츠가 별 건가? 누구나 합의하는 규칙을 정하고, 서로 경쟁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어엿한 스포츠 하나가 탄생한다.

심지어 올림픽 종목조차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줄다리기가 육상 종목에 포함된 때가 있었고, 불 끄기나 인명 구조 같은 황당한 종목도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구슬치기나 판치기, 땅 따먹기 같은 추억의 놀이들이 스포츠가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풍선껌 크게 불기나 말 빠르게 하기 같은 종목은 어떤가? 한평생 살면서, 딱 나만 잘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 발견할 수 없겠는가? 그리고 그 일을 운동으로 만들면, 내가 잘 하는 운동 하나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농담 같은 생각이라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똑같은 생각으로 진지한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이 실제로 있으므로. 아니 조금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세상에는 그런 사례들로 넘쳐난다. 보드게임만 해도 그렇다. 체스나 바둑, 루미큐브나 다빈치코드 같은 두뇌 게임만 보드게임은 아니다. 보드게임에도 스포츠가 있다. 여기서는 사소한 작은 동작이 흥미로운 놀이로 탈바꿈한다. 코코너츠와 토스트 통통이다.

◇휙 던져서 쏙 집어넣는다_코코너츠
코코너츠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버려야 할 작은 깡통이 있는데 쓰레기통이 좀 떨어진 곳에 있다면? 가는 걸음이 아까워서라도 그 자리에 서서 던져본다. 들어가면 걸음도 아낄 수 있지만 웬지기분도 좋다. 코코너츠가 스포츠로 만든 일상이다. 휙 던져서 쏙 집어넣는다.

상자를 열면 매끄럽게 윤이 나는 원숭이 인형 4개가 나온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웃는 얼굴. 한 무더기의 탱탱한 코코넛도 눈에 띈다. 물론 코코넛을 아침에 4개 줄 지 저녁에 4개 줄 지 고민하는 게임은 아니다.

원숭이의 손을 살짝 눌렀다가 떼면 탄성이 있어서 튀어 오르는데, 그렇기에 우리는 그 위에 코코넛 하나를 올려놓아 본다. 다시 눌렀다가 뗀다. 코코넛이 휙 날아간다. 여기에 상자에서 같이 나온 컵 여럿을 보면 감이 온다. '놓고 눌렀다가 떼서 저 컵 안에 집어 넣는 게임이구나'라는. 코코너츠의 풍성한 내용물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조건반사와도 같이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시작한다. 설명서의 규칙을 모두 정확히 적용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런 설명만으로도 일단은 충분하다. '놓고 눌렀다가 떼서 집어넣어보자'. 컵을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 두고, 무작정 쏜다. 쏘면서 조금씩 규칙을 추가해본다. 설명서를 참고해도 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도 된다.

코코너츠의 묘가 여기에 있다. 상자 안에는 본능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가득해서, 사람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놀이방법을 생각해낸다. 이후에는 직접 가지고 놀면서 게임을 우리에게 맞춘다. 코코너츠는 그 자체로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우리 자신만의 스포츠를 만들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할 때는 누릴 수 없는 순간이다. 거기서는 우리가 게임에게 맞춰준다.

게다가 쏘다 보면 느낀다. 만만치가 않다! 두 가지의 섬세한 계산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컵이 위치한 곳을 향해 원숭이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한편, 거리를 생각한 힘 조절도 해야 한다.

겉모습만 보면 어린이나 즐길만한 단순한 게임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쏘았다 하면 어른도 빠져드는 게임이 코코너츠다. 실제로 2013년 지스타에서는 임요환과 홍진호 등 왕년의 두 프로게이머가 코코너츠로 대결을 했는데, 각 선수가 보여준 몰입과 긴장감은 프로경기를 방불케 했다.

◇툭 떨어지면 쓱 하고 받는다_토스트 통통
코코너츠의 내용물이 인간의 놀이본능을 자연스럽게 자극한다면, 토스트 통통의 내용물은 신기한 마법도구에 가깝다. 역시 큼지막한 토스터기가 핵심일 텐데, 생김새부터 범상찮다. 눈코입도 모자라 팔다리까지 달렸다. 코에 해당하는 부품은 아래로 누르면 태엽 돌아가는 소리도 낮게 들린다. 대체 뭘 하자는 물건일까? 이 게임은 금단의 마법서를 읽듯 설명서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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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통통 안에는 토스터기 외에도 앙증맞은 프라이팬이 넷, 다양한 토스트가 그려진 카드가 수십 장 들어있다. 설명서를 읽으면 카드와 프라이팬의 용도가 나온다. 카드는 토스트기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토스트기의 코를 누르면, 태엽이 돌아가다 카드 몇 장이 토스터기에서 갑자기 튀어 오른다. 사람들은 각자 프라이팬을 하나씩 손에 쥐고 있다가, 떨어지는 토스트 카드를 프라이팬으로 받아낸다. 즉 툭 떨어지면 쓱 하고 받으면 되는 게임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토스터기의 사용법을 알게 되면, 일단은 게임보다도 토스터기가 마냥 신기하다. 처음 몇 번은 프라이팬으로 받아낸다는 게임의 목표마저 잊을 정도다. 카드가 토스터기에서 튀어 나오는 시간은 일정치 않으므로 깜짝 놀라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 토스터기의 코를 누르는 친구의 손놀림이 경쾌한가? 아마 이 마법 같은 순간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리라.

뿐만 아니다. 상상력이 자유로운 어린이는 한술 더 뜬다. 그들은 고민한다. '토스터기를 더 재미있게 가지고 놀 방법은 없을까?' 코코너츠와 마찬가지로, 규칙은 사람들이 노는 방식을 조금도 제약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함께 놀면서 능동적으로 놀이법을 바꾸고 추가한다. 여기서도 스포츠는 기성품이 아니라 수제품이다.

◇스포츠, 가끔은 만들어도 보자
어느 보험회사 광고가 보여주었듯이,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도 이제 사람들은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천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 보험회사가 모든 것을 처리해주니까. 우리는 이토록 편리한 시대를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이 어떤 계기로 만나든, 우리는 우리 사이를 스스로 합의하고 조율하길 점점 꺼리게 되었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이런 경향은 강해진다. 변화는 놀이에서부터다. 게임 진행을 컴퓨터라는 제3자에게 맡기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일까? 교육자들은 심심찮게 다음과 같은 사례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이제는 어린이들이 잘 놀다가도 분쟁 소지가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맞는 규칙인지 묻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이 이러는 게 맞댔어"라며 권위를 빌린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아무래도 뭔가 석연찮다. 놀이 규칙이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조금씩 정해나가면 되는 문제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것은 코코너츠와 토스트 통통이 환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둘은 스포츠다. 주어진 스포츠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스포츠 중의 하나다. 규칙을 바꾸고 추가하는 과정은 자신에게 맞는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함께 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규칙을 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니 스포츠, 가끔은 만들어도 보자.

이창민 보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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