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서상범의 광고톡!톡!]미국 광고계를 경악시킨, 광고판 ‘캐치 미 이프 유 캔’
HOOC| 2016-12-22 18:01
[HOOC=서상범 기자]‘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지난 2003년 개봉한 희대의 천재 사기꾼 프랭크 에버그네일의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희대의 사기범을 지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죠.

최근 미국 광고업계에서는 이 단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미국 광고업계를 그야말로 경악에 빠트린, 한 사기꾼 때문입니다.
빌 그리잭

이 사기꾼의 이름은 빌 그리잭(Bill Grizack). 베리어블(Variable)이라는 미국 광고 대행사의 직원이던 그는, 단기간 내에 유명 광고주들의 광고물량을 따내며 업계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가 따낸 물량만 2억6000만달러, 우리 돈 약 3000억원이 넘는 규모였죠.

하지만 이 모든 계약은 ‘사기’였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계약’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광고톡!톡!>은 미국광고계를 뒤흔든 희대의 사기범, 빌 그리잭의 스토리입니다.

빌 그리잭은 지난 2003년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뒤, 본격적으로 광고업계에 뛰어듭니다. 그는 컴퓨터 기술을 결합한 광고전략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게되죠. 그러다 베리어블의 전신인 페이브(PAVE)와 2010년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능력을 발휘한 그는 다음해 페이브의 정식 직원이 되죠. 연봉 15만 달러라는 높은 대우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파트너, 그러니까 그가 수주한 계약에 대해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죠.

그러자 페이브는 그리잭에게 성과를 보여달라고 제안했죠. 바로 50만 달러 이상의 새로운 물량을 따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리잭은 ‘브랜드포렌식’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해 경영진에게 제안했습니다. 광고주들에게 고객들의 성향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브랜드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서비스였죠. 이 서비스의 첫 고객으로 그는 두 업체와의 계약서를 페이브의 경영진에 내밀었습니다. 액수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을 고객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바로 세계적인 위스키 회사 잭 다니엘과 코카콜라였죠. 두 업체가 브랜드포렌식을 사용하겠다고 계약서에 밝힌 금액만 90만 달러. 회사 측이 요구한 성과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페이브의 이름은 베리어블로 바뀌었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두 회사와의 계약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그리잭은 두 회사의 경영진을 만난 적도 없었고, 당연히 계약에 대한 실체조차 없었죠. 그가 베리어블에 내민 계약서는 모두 그가 꾸며낸 가짜 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리어블의 누구도 그의 사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 사이에 그리잭은 승승장구 합니다. 연봉의 인상은 물론이고, 회사로부터 고급 SUV를 제공받기도 했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리잭의 가짜 계약을 믿고, 베리어블은 프로젝트를 맡은 인력을 구성해야 했는데요. 워낙 규모가 큰 (가짜)계약이다보니, 자사의 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베리어블은 평소 협력 관계에 있던 매키니(McKinney)라는 회사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제안을 받은 매키니는 2012년 6월 그리잭의 가짜 계약을 도울 팀원을 40여명 가량 뽑으며 참여하게 되죠. 심지어 이 과정에서 그리잭은 베리어블에게 받는 연봉 외에도, 매키니로부터 25만 달러라는 연봉을 받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두 회사를 한 번에 ‘낚은’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리잭의 사기 행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2012년 하반기에 잭 다니엘과 코카콜라와 추가 계약을 맺었다고 베리어블과 매키니 측에 보고했는데요. 금액은 앞서의 90만 달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무려 269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모두 존재하지 않는, 사기 계약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그의 사기 행각을 보셨다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대체 이런 규모의 거대 계약을 단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믿을 수 있었나? 베리어블과 매키니라는 회사의 시스템은 이를 검증하지 못했나? 아니면 단순히 회사의 경영진이 계약 당사자 측에 확인 전화 한 번만 했어도 규명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물음입니다.

바로 여기서 미국 광고업계의 치명적인 결함이자, 그의 사기 행각을 가능하게 했던 관행이 드러납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 광고회사들은 파트너(그리잭이 그렇게 원했던)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광고주와 직접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 외에, 이런 파트너들을 활용하는 것이죠. 파트너들은 계약을 따오고, 그 계약의 일정정도를 성공보수로 광고회사들에게 받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다보니, 전적으로 파트너들을 신뢰하고, 향후 계약 진행사항도 파트너에게 일임하게 되죠. 

물론 이 과정에서 그리잭의 용의주도한 사기기술도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잭 다니엘과 코카콜라의 최고위층의 사인을 위조하는 것은 물론, 그들과 주고받은 가짜 이메일, 심지어 자신의 사무실에서 상대방과 마치 통화를 하는 것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 경영진을 안심시켰죠.

그러나 결국 그의 사기는 밝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약을 실체가 없었지만, 돈은 실체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죠.

베리어블과 매키니 측은 그에게 계약으로 인한 수익은 언제쯤 발생하냐고 캐물었고, 그 과정에서 내부 고발자가 그의 허위 행각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죠.

결국 그는 2013년 상반기 두 회사를 모두 떠납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광고 회사에서 2년간 광고 전문가로 활동을 하죠. 이 과정에서도 사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2014년에도 맥도널드와 1400만 달러 규모의 허위 계약을 진행하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희대의 사기꾼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요? 2015년 10월 그의 모든 사기 행각에 대해 미국 검찰이 기소를 했고, 2016년 법원은 그에게 사기 혐의 등을 인정해 최소 5년, 최대 6년형을 선고했습니다.

미국 광고계를 흔든 희대의 사기꾼은 현재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르는 중이죠.

사실 이 내용은 올해 상반기 미국 광고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기가 가능했는지, 또 이 것을 가능하게 한 광고업계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죠.

언젠가는 이 희대의 사기꾼의 이야기가 영화로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감히 예상도 해봅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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