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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단일화와 불출마의 정치학①]김종필, 정몽준, 안철수 ‘역대급’ 양보의 결과는?
뉴스종합| 2017-01-28 08:01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단일화’와 ‘불출마’. 역대 우리 대선에서 빠지지 않는 변수들이다. 이미 올해 대선레이스가 본격 스타트하기 전에도 벌써 일부 주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향후에도 후보 단일화와 일부 예비 후보들의 불출마가 최대 변수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역대 대선을 살펴보면 결과를 크게 좌우했던 ‘역대급’ 후보 단일화와 불출마 선언이 있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후 처음 치러졌던 1987년 대선에선 야권이 분열돼 정권교체에 실패했던 때문인지 ‘단일화’는 주로 야권의 의제가 돼오기도 했다. 이 때의 대선에선 김영삼(28.0%, 이하 실제 득표율)ㆍ김대중(27.1%) 등 두 범민주진영 후보가 각각 출마해 여권 노태우 후보(36.6%)에 졌다. 범민주 진영 후보 두 명의 득표율을 합하면 보수진영의 노태우, 김종필(8.1%)을 앞섰다는 게 야권지지층에선 두고 두고 통한의 기록으로 남았다. 

불출마와 단일화가 대선판을 뒤흔들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이로부터 10년 후인 1997년 대선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일부 정치세력이 그 재현을 꿈꾸고 있는 ‘DJP연합’이다. 범민주진영 김대중(DJ) 당시 후보와 충청권 맹주 보수 후보 김종필(JP) 전 총리간의 전략적 연대다. ‘DJP연합’은 이들의 집권으로 귀결됐다.

2002년에도 다시 한번 범민주 진영과 보수 후보간의 연합이 이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당시 후보간의 연합이다. 당시 투표일을 불과 25일 앞둔 그해 11월 24일 정몽준 당시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지지와 불출마를 전격선언했다. 대선 판이 하루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유력했던 이회창 ‘대세론’이 뒤집혔다. 전날인 11월 23일 한국 갤럽 여론조사는 이회창 32.3% 노무현 25.4% 정몽준 25.1%였으나 정 후보의 노 후보 지지선언 이튿날인 11월 25일엔 이회창 37.0%, 노무현 43.5%로 크게 역전됐다. 정몽준 지지층의 3분의2 가까이가 고스란히 노 후보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이 때의 노-정 공조는 그러나 투표일을 불과 1시간 30분여 앞두고 파괴됐다. 정 후보가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여파로 오히려 노무현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노 후보가 48.9%의 득표율로 이회창 후보(46.6%)를 눌렀다. 한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롤러코스터같이 오르내린 극적인 대선판이었다.

후보 단일화가 야권의 최대 이슈로 다시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인 바로 지난 18대 대선, 2012년이었다. 당시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달렸고 그 뒤를 무소속 안철수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차례로 잇고 있었다. 대선 3개월 전후 다자간 대결에선 여론 지지도가 박 후보는 40%를 넘나들었고 안 후보는 25% 내외, 문재인 후보는 20%가 힘겨웠다. 양자대결에선 박-안 양자대결이 오차범위 내 박 후보의 근소우세였고 나타났다. 박-문 대결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격차가 벌어졌다. 그러나 당시 대선을약 한달 앞두고는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역전해 지지율에서 조금씩 앞서나갔고, 안 후보가 결국은 야권 단일후보자리를 ‘양보’하고 불출마했다. 결과는 3.6% 차 박 후보의 승리였다. 

‘단일화’가 승리로 연결되고, 불출마로 양보를 택한 쪽도 당선자와 함께 권력을 나눈 ‘모범적인’ 사례는 DJP연합 밖에는 없었다.

단일화를 위한 양보의 목표로는 흔히 ‘연정‘(연립정부) 참여나 차기 대권 도전에 대한 지원, 소수파의 정치적 생명 및 지분 확대가 꼽힌다. 그러나 2002년엔 정몽준 후보 스스로가 공조를 파기하면서 어떤 목표도 이뤄지지 못했고, 2012년엔 문-안 연대가 승리로 귀결되지 않으면서 안철수 당시 후보도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올해에는 벚꽃대선이 이뤄지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후보단일화 이슈가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분권형 개헌과 연정이 주요 이슈로 부상하면서 후보ㆍ세력간 연대의 성과를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범보수와 범민주진영이 각각 2개의 원내 정당으로 쪼개지고, 군소 세력도 적지 않아 반드시 집권을 목표로하지 않더라도 대선 이후 정치적 지분의 확대를 도모할 가능성이 커진 때문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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