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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Data] 탄핵 결론 못보고 떠나는 박한철 헌재 소장…세번째 ‘소장 공백’ 국회·정치권에 쓴소리
뉴스종합| 2017-01-31 11:19
“로펌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자유인이 된다면 국가로부터 받은 과분한 은덕을 어떻게 돌려드릴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4월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에서 박한철(64ㆍ사법연수원13기) 소장은 퇴임 후 진로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리고 4년여의 시간이 흘러 박 소장은 ‘자유인’이 됐다.

3년10개월의 소장 임기를 마친 박 소장은 31일 퇴임식을 끝으로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청사를 떠났다. 2011년 2월 1일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후 소장이 되기 전까지 보낸 2년 2개월의 시간을 합치면 헌재에서 꼬박 6년을 지낸 셈이다.



박 소장은 검찰 재직 시절인 1996년 헌법연구관 생활을 하며 처음 헌재와 인연을 맺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검사 출신 첫 헌재소장이 된 그는 임기 막판 박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그러나 임기 만료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떠나게 된 그는 대신 퇴임사에 못다한 메시지를 담으려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설 연휴에도 출근했던 박 소장은 이날 오전 퇴임식 직전까지 퇴임사를 직접 수정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초대 조규광, 2대 김용준, 3대 윤영철, 4대 이강국 등 역대 헌재소장이 모두 6년 임기를 채운 것과 달리 박 소장은 최단기 재임한 소장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박 소장은 탄핵심판을 포함해 ▷헌법소원심판 ▷위헌법률심판 ▷권한쟁의심판 ▷정당해산심판 등 헌재법이 규정한 ‘5대 사건’을 모두 심리하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1988년 헌재 출범 이래 첫 정당해산 사례였다. 지난해엔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싸고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이 벌인 권한쟁의 사건을 심리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부터는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매진해왔다. 이외에도 간통죄 위헌(2015년), 김영란법 합헌(2016년), 사법시험 폐지 합헌(2016년)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선고를 잇달아 내리며 시선을 헌재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통진당 해산 결정 유출 의혹은 오점으로 남는다. 헌재가 통진당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사전에 교감한 것으로 해석되는 내용이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 기록돼 의혹이 제기됐다.

박 소장은 임기 중 최고 재판기관의 위상을 두고 대법원과 힘겨루기도 벌였다. 지난해 3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그는 현재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시스템에 대해 “솔직히 자존심이 상한다”며 “이 문제는 헌법재판관의 민주적 정당성과도 관련 있다. 대법원장이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상황에서 지명한 헌법재판관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박 소장 후임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헌재는 세 번째 ‘소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2006년에도 윤영철 소장 퇴임 후 129일간 소장 자리가 비워져 있었고, 2013년 이강국 소장 퇴임 후 80일간 공백이 있었다. 박 소장은 “연속해서 공석이 발생하고 있는데 10년 이상 아무런 후속 입법조치도 없이 방치한 국회와 정치권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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