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프리즘] 당명 돌려막기, 이념의 스태그플레이션
뉴스종합| 2017-02-07 11:01
솔직히 말하자면, 당명 개정에 관한한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처음에 한 말이 옳아보였다. 인 비대위원장은 지난해말 취임 초기만 해도 당명 개정에 부정적이었다. “당명과 로고를 바꾼다고 당이 바뀌겠느냐”며 인적ㆍ정책의 쇄신이 핵심이라는 게 인 위원장의 말이었다. 사람도 실수할 때마다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며 당명이 가진 역사성을 강조한 것도 인 위원장의 뜻이었다.

역사에는 늘 영예와 오욕이 함께 있는 법이다. 보수 지지층의 입장이라면,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엔 5년전 한나라당을 이어 보수 정권 재창출을 해낸 자랑스러운 역사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부끄럽고 참담한 시간의 흔적이 모두 각인돼 있다.

그러나 결국 새누리당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보수의 힘’ ‘국민제일당’ ‘국민행복당’ 등이 후보에 올라있다. 새누리당은 이 3개를 포함해 후보를 확정한 뒤 오는 9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명 돌려막기’다. 빚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메꾸려고 다른 데서 또 돈을 끌어오는 격이다. 하기 좋은 말로 “이름 빼고 다 바꾼다”고도 하는데, “다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꾸는 격”이 될까 우려스럽다.

‘영혼없는 이름바꾸기’, ‘당명의 돌려막기’로는 현재 국회에 존재하는 모든 정당이 자유로울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당장 떠오르는 과거의 이름이 나열하기 숨차다. ‘바른정당’은 새누리당에서 파생했고, ‘국민의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갈라졌다. 소수당인 ‘정의당’도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노동당 등 과거의 여러 이름이 얽혀있다.

선거 때마다 남아 있거나 떠나거나 유불리를 셈하고,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당 만들기를 밥먹듯 하는 한국 정치의 후진적인 행태가 한국의 정당사, 특히 당명의 역사에 그대로 담겼다.

그 이면에는 정당의 결성이 정치인들의 이념 혹은 정치철학보다도 공천이나 지역적인 이해로 비롯된 우리 정치사가 반영돼 있다.

특히 최근엔 ‘이념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 할만한 현상이 더욱 심하다. 정치철학으로서의 이념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았으면서도, 정작 진영 논리는 강하고, 특정 이념성향의 지지층을 노린 노골적인 정치 행위는 더 많아졌다. 자신의 정치철학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표’를 위해 일부 유권자들의 ‘편견’에 투항하는 현상이다. 쉽게 당적을 바꾸고, 결사체를 지었다 부수고, 셈 맞는 사람들이 모였다 헤어지기는 일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중도’와‘통합’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특정 성향 지지층에 대한 지분과 기득권에 기대기 일쑤다. 5당 체제에 다자의 대선주자가 나선 올해는 더 그렇다.

우리의 당명에는 과연 어떤 역사와 정치 철학이 있을까. 당적의 변경과 세력간 연대는 과연 같은 국가 운영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기초로 하는 것일까. 당명으로 보는 우리 정당사로는, 결코 긍정의 답을 하기 어렵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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