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카페
[리더스카페] 경제를 보는 다른 시각, 여자
라이프| 2017-02-09 11:45
‘88만원 세대’ 우석훈이 겪은 육아현실
한국에선 아이를 안 낳는게 이문

잠깐 애덤 스미스씨,’..주류 경제학에 한 방
돌봄산업의 경제적 가치 높여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애덤 스미스의 저녁을 차린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다”“엄마를 배려하는 육아야말로 최고의 정치경제학이다”

이 둘은 한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만 전자는 스웨덴의 넉핀션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카트리네 마르살, 후자는 ‘88만원 세대’의 경제학자 우석훈의 말이다. 경제적인 가치가 여전히 덜 인정되고 여성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가사와 육아에 이들은 왜 주목한 것일까?

[사진설명=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우석훈 지음/다산북스]

우석훈은 신간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다산북스)에서 아무도 풀지 못하는 한국의 육아현실을, ‘육아전선’에 나선 아빠의 경험을 살려 경제적으로 꼼꼼하게 짚어낸다.

그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의 의미를 ‘한 푼 벌어 두 푼 나가는 것’이란 한 마디로 요약한다. 아이 한 명당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2억 원. 그야말로 오늘 한 푼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둘 이상의 아이를 낳는 일은 한국의 중산층 가정으로선 버거운 현실일 수 밖에 없다. 그가 아내의 임신으로 겪어낸 육아정책은 그야말로 허점투성이다. 제도상으로는 임신하면 의료비를 지원하고 출산을 하면 해산 급여를 지원하지만, 부부기준으로 소득이 120만원 보다 적어야 받을 수 있는 제도여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면 크게 병원비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프기라도 하면 비용은 겁날 정도다. 출산 중에 호흡곤란으로 집중치료실로 가는 아기는 10명 중 1명꼴. 이들을 위한 지원은 없다. 출산 후 대부분의 산모가 이용하는 산후조리원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예약도 하늘의 별따기. 위생문제에 가난한 산모의 박탈감까지 감안하면 대안이 필요하다. 저자는 일본의 예를 들어 출산 후 입원 기간을 원하는 경우,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로 늘리고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아이를 위해 이유식을 만들고 분유와 유모차를 고르고, 잠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 중 경제적인 이유도 컸다. 출산 후 엄마의 소득이 줄고 지출은 늘어나니 당연한 일이다. 출산 후 여성은 가장 힘든 100일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충분히 쉬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린다. 거기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한국에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은 천국문과 지옥문을 동시에 여는 것과 같다”는 저자는 천국문 쪽이 좀 더 커지게 하려면 아빠가 좀 더 아기를 많이 돌보고 정부가 좀 더 친절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설명=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카트리네 마르살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부키)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는 말에서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개인의 이익 추구 본능을 얘기했지만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를 돌봐준 어머니를 빼먹었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 아내와 누이 덕분에 빵집 주인이 이기심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짐바브웨의 로펠트에 사는 한 여성은 새벽 4시에 일어나 11킬로미터를 걸어서 물을 길어온다. 집에 돌아오면 땔감을 모으고,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 다음 채소를 수확하러 나간다. 그리고 다시 물을 길어오고 저녁을 짓고 동생을 재우고 나면 밤9시다. 현재 경제학 모델에 따르면, 그녀의 고된 노동은 경제 수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녀의 노동은 비경제적, 비생산적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런 노동의 유용성은 현재 만연한 돌봄 산업으로 입증된다. 많은 여성들이 고용시장에 진출했지만 상당수가 바로 가사 도우미, 육아 도우미 등 본래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돼온 집안살림들에 종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경제구조가 성불평등, 경제적 불평등을 영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래 청소를 해야 할 사람의 시급보다 가사 도우미의 시급이 현저히 낮지 않으면 가사 도우미를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를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경제적 보상이 중요치 않은 행위이고, 물질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건 자기 이익 추구 욕구에 따른 경제적 행위로 보는 탓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잡기는 여성에겐 더 요원한 일이다. 여전히 육아와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으며 이로 인해 스트레스와 시간 부족을 호소하게 된다. 저자는 이는 “계층과 상관없고, 결혼을 했는지의 여부도 상관없으며,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어느 나라에 사는지, 자녀의 유무도 상관없다”며, 이제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확보’이상의 훨씬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페미니즘이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불평등, 복지체계, 인력 부족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를 경제학에 포함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얘기가 꽤나 설득적이다.

mee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