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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소환 재계 촉각] 총수들 두달넘게 출국금지…기업하기 힘든 나라
뉴스종합| 2017-02-13 11:11
“환부만 도려내는 것이 특수 수사의 기본”
두달 넘게 총수들 ‘출국금지’ 손발 꽁꽁
촛불 여론 업고 국회 경제민주화 법안 탄력
재계 “국제 투기자본의 놀이터 될라” 우려

“이렇게 수사를 해서야 어디 기업하겠습니까”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재차 부른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수 수사는 정교하게 아픈 부분만을 캐내듯 도려 내고 나머지 부분은 덮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이번 특검은 손에 쥔 칼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고 보탰다.

이 부회장이 특검에 재소환 되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형사 처벌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삼성측은 ‘올 것이 왔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들도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총수 두달넘게 출금…투자ㆍ경영 올스톱= 13일 재계와 특검팀 등에 따르면 재계 총수들에 대한 출국금지 상황은 두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재판 출석 등으로 인해 법정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 아예 출국 할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회장님의 출금은 특검 기간 중에는 계속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수사가 검찰로 넘어가는 등 수사 주체가 바뀌어야 해제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검 관계자는 “출금 상황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출금 장기화는 기업 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매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했으나 올해는 출국금지 조치로 참석 못했다. 지난해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그룹 게열사 CEO들은 다보스포럼을 마치고 유럽, 북미, 중국 등 3개 대륙을 돌았으나 올해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SK그룹 수펙스팀은 이 부회장의 출석 소식이 전해진 12일 오후 팀 전원이 출근해 상황을 지켜봤다. 휴일 출근은 통상의 일이지만 이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재소환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뒤여서 분위기는 더욱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씀 외에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사태와 중국의 사드 압박 등으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주요 의사결정이 죄다 보류되고 있는 경제 상황도 감안돼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재계는 이미 지난해 12월 청문회 출석에 이어 특검 출석, 이번달 말에는 법원에까지 총수들이 줄줄이 출석을 해야 하는 형편에 놓여있다. 정기 인사는 지연됐고 신규 채용 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여기에 국회에선 ‘죄인’이 된 재계 총수들을 옥죄는 법안들이 상정돼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의 “이게 나라냐”는 분통이 터져 나온다.

이달말인 오는 28일 법원에 출석하는 재계 총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다. 이들은 최순실 사태 관련 공판 증인으로 채택돼 관련 증언을 하게 된다. 총수가 언제 또 재판에 출석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굵직한 사업 결정은 보류됐고 방어적 경영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검 ‘유탄’을 엉뚱하게 취업준비생들이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과 현대차, 롯데 등 1만명 이상을 뽑는 취업 시장 ‘큰손’들이 채용 일정과 규모 등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그룹 가운데 채용 일정을 확정한 곳은 SK, 한화, GS 등 3곳 밖에 없었다.

▶촛불 업고 ‘경제민주화법’ 탄력
= 이 와중에 국회에선 총수들의 경영권을 압박하는 법안 처리가 탄력을 받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주권 제고’를 목표로 하지만, 결과적으론 국제 투기자금의 위험에 한국 기업들의 경영권이 고스란히 노출 될 수 있는 방안들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야는 지난 9일 상법 개정안 중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전향적으로 처리키로 합의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소액주주 권리 보호,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헤지펀드 등 기업사냥꾼들에게 좋은 일만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로 반기업 정서가 높아진 상황을 틈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법안을 무턱대고 통과시킨다면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법안들은 야당의 주도로 2월 임시국회 통과가 추진되고 있다. 핵심은 소액 주주 권리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재벌을 개혁하려는 취지의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우리사주조합의 사외이사 후보추천권부여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 5가지다.

재계의 반발은 거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상법개정안의 5대 쟁점에 대한 검토의견’보고서에서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내어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계투기자본이 이른바 ‘지분 쪼개기’로 3% 제한을 피하며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대주주보다 주식을 적게 보유하고서도 자식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사를 다수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한데 분리선임을 강제해 이런 제한을 더 강화하려는 개정안은 주주의 이사선임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주식회사 제도 본질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홍석희ㆍ김진원 기자/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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