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상해 소년 독립운동가의 일기 발견, “나는 뛰고 싶다”
라이프| 2017-02-27 15:04
-독립기념관, 1930년대 독립운동 자료 발굴 첫 공개
-소년척후단 배준철의 일기, 한인사회 연구 가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 “금일은 제16회 3.1절 기념이다. 대한민국17년 기원4268년…한국의 아들과 딸 된 자는 누구를 물론하고 이 날을 거룩하게 하라.묵은 옛 기억도 여기서는 만날 수 없다. 힘이 부족함이냐? 정성이 부족함이냐? 나는 뛰고 싶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1932년 윤봉길 의거 당시, 김구의 심부름으로 도산 안창호에게 피신하라는 전갈을 전하러 간 소년, 배준철의 1935년 3월1일자 일기다. 1932년 5월 임시정부가 항주, 진강, 장사 등지로 이동하면서, 상해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공개적인 기념행사가 불가능했다. 배준철은 공개적으로 행사를 벌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민족의식을 잊지 말하야 함을 다짐하며 격정적인 마음을 담아냈다.

[사진설명=사진 맨 왼쪽이 소년척후단의 배준철 모습.]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이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아 30년대 상해에 거주하며 현지 한인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4권을 발굴, 공개했다. 이와함께 인성학교 교장 선우혁, 독립운동가 연병환 묘지, 윤봉길의거 현장인 홍구공원 전경, 상해 인성학교 관련 자료 등 20점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특히 배준철의 일기는 1932년 윤봉길의거 후 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난 후 현지에 남아있던 한인사회의 실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다.

1932년 윤봉길 의거 후, 상해 프랑스조계 당국은 더 이상 한인의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보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프랑스조계를 떠나 고난의 이동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후 상해의 한인사회와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배준철의 일기 가운데 1936년 3월6일자 일기에는 “김창근과 조선 사람 한 명이 잡혀 일본영사관에 왔다"는 내용이 있다. 1930년대 후반에도 상해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이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1937년 1월1일 일기에는 “새벽에는 누구보다도 일찍 정안사의 한인 무덤을 찾아 일일이 새해 인사를 했다"고 적고 있다.

배준철은 1918년 평북 선천 출신으로, 1931년 상해로 건너가 한인사회에서 설립한 인성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1930년대 후반 상해에 거주하면서 한인사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했고, 특히 인성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상해한인소년척후대의 부대장을 지냈다.

소년척후단은 미래 의용대나 광복군으로 활동할 인재를 양성하는게 목표였다.

정기적으로 야영을 하거나 텐트치는 법, 신체훈련 등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한글과 창가를 배우는 등 학습활동도 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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