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회연대위원장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큰누나도 아닌, 작은누나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치열하게 투쟁하면서도 포용과 즐거움을 잃지 않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쟁의국장 시절의 심 후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사진=헤럴드경제DB] |
한 위원장은 심 후보가 주도해 1990년 결성한 전노협에서 함께 일하며 인연을 맺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심 후보가 ‘노동운동의 전설’로 불리던 때다. 전노협 면접 날, 전설 앞에서 한껏 긴장한 한 위원장에게 심 후보는 귤을 내주고 농담 몇 마디를 건네다 “전노협 들어오면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로 면접을 끝냈다고 한다. “여장부라고 해서 각오하고 갔는데 면접 참 쉽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이미 면접자를 꼼꼼히 점검해서 그런 거였다.”
심 후보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특유의 치밀함으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리더였다. 한 위원장은 “같이 노동운동을 하면서 심 후보가 인상 쓰면서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재밌는 건 그런데도 남자들이 다 심 선배 앞에서 쩔쩔 맸다“며 “심 후보가 치밀함으로 압도하니 억센 남성들도 함부로 못 했다. 내용으로 승부하는데 심 후보는 항상 한발 앞섰다”고 했다.
심 후보는 또 통합에 능했다. 전노협이 NL(민족해방)ㆍPD(민중민주) 노선을 두고 맹렬하게 다투던 90년대 초, 심 후보는 갈등을 중간에서 중재하고 정리했다. 한 위원장은 “저는 PD 계열이었기 때문에 심 선배가 타협하고 절충하는 것 아니냐고 우는 소리를 했고 한동안 못마땅했다”며 “2~3년 지나고 보니 타협과 절충이 아니라 통합력이구나, 저런 걸 배워야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서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의 심상정 후보(가운데). 한석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회연대위원장은 심 후보 머리 밑에서 앞 사람의 손에 얼굴이 가려져 있다. [사진제공=한석호 위원장] |
2004년 총선에서 심 후보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민주노총 간부인 한 위원장이 보는 진보 진영 대선 후보 심상정은 어떨까. 그는 ”작은누나가 큰누나가 됐다는 느낌”이라며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고들 하는데 딱 그거다. 심 선배는 한국 진보 정치와 한국 미래의 살림밑천”이라고 했다.
심 후보는 인생을 통해 한국 진보 진영의 궤적을 그려왔다. 한 위원장은 그런 심 후보에 대해 “길을 만드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서울대 총여학생회를 최초로 만들었고 구로동맹파업부터 민주노동당을 거쳐 정의당 창당, 주5일제까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 과정에서 심상정이란 사람이 핵심이었다는 걸.”
ye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