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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내가 아는 대선후보는 ⑤심상정] “엄혹한 시기에도 ‘디스코 댄스’를 출 줄 알던 작은 누나”
뉴스종합| 2017-04-18 11:18
[헤럴드경제=유은수ㆍ홍태화 기자] “수련회를 가려고 청량리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 카세트 테이프를 틀었더니 디스코 음악이 나왔다. 심상정 선배가 일어나서 같이 춤 추자며 신나게 디스코 댄스를 추는데 충격이었다. 엄혹한 시기에도 저런 끼가 발휘되는구나.”

한석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회연대위원장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큰누나도 아닌, 작은누나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치열하게 투쟁하면서도 포용과 즐거움을 잃지 않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쟁의국장 시절의 심 후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사진=헤럴드경제DB]

한 위원장은 심 후보가 주도해 1990년 결성한 전노협에서 함께 일하며 인연을 맺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심 후보가 ‘노동운동의 전설’로 불리던 때다. 전노협 면접 날, 전설 앞에서 한껏 긴장한 한 위원장에게 심 후보는 귤을 내주고 농담 몇 마디를 건네다 “전노협 들어오면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로 면접을 끝냈다고 한다. “여장부라고 해서 각오하고 갔는데 면접 참 쉽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이미 면접자를 꼼꼼히 점검해서 그런 거였다.”

심 후보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특유의 치밀함으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리더였다. 한 위원장은 “같이 노동운동을 하면서 심 후보가 인상 쓰면서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재밌는 건 그런데도 남자들이 다 심 선배 앞에서 쩔쩔 맸다“며 “심 후보가 치밀함으로 압도하니 억센 남성들도 함부로 못 했다. 내용으로 승부하는데 심 후보는 항상 한발 앞섰다”고 했다.

심 후보는 또 통합에 능했다. 전노협이 NL(민족해방)ㆍPD(민중민주) 노선을 두고 맹렬하게 다투던 90년대 초, 심 후보는 갈등을 중간에서 중재하고 정리했다. 한 위원장은 “저는 PD 계열이었기 때문에 심 선배가 타협하고 절충하는 것 아니냐고 우는 소리를 했고 한동안 못마땅했다”며 “2~3년 지나고 보니 타협과 절충이 아니라 통합력이구나, 저런 걸 배워야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서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의 심상정 후보(가운데). 한석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회연대위원장은 심 후보 머리 밑에서 앞 사람의 손에 얼굴이 가려져 있다. [사진제공=한석호 위원장]

2004년 총선에서 심 후보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민주노총 간부인 한 위원장이 보는 진보 진영 대선 후보 심상정은 어떨까. 그는 ”작은누나가 큰누나가 됐다는 느낌”이라며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고들 하는데 딱 그거다. 심 선배는 한국 진보 정치와 한국 미래의 살림밑천”이라고 했다.

심 후보는 인생을 통해 한국 진보 진영의 궤적을 그려왔다. 한 위원장은 그런 심 후보에 대해 “길을 만드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서울대 총여학생회를 최초로 만들었고 구로동맹파업부터 민주노동당을 거쳐 정의당 창당, 주5일제까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 과정에서 심상정이란 사람이 핵심이었다는 걸.”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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