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재미없지만 잠깐 공부하면 좋은학점” 인기강의 핵심 알고보니 ‘족보’ 였네
뉴스종합| 2017-04-26 11:15
강의평가 사이트 ‘족보 거래’ 만연

“강의는 재미없지만, 족보가 있어 시험기간에만 잠깐 집중하면 됩니다. 진짜 추천해요.” 사설 강의평가 사이트에 올라온 서울대학교의 한 교양 강의 후기다. 사정은 다른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족보가 있어 조금만 공부해도 된다”는 내용의 강의 평가가 수두룩하다. 반면, 특정 강의는 “공부량이 많고 과제가 매주 있어 추천하지 않는다”며 별점 1점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강의 평가 사이트에는 족보와 공부량을 기준으로 강의 평가를 하는 현상이 만연하다. 아예 사설 강의평가 사이트에서는 교수 이름과 함께 해당 강의의 족보를 돈을 받고 팔기까지 한다. 강의 평가에는 어김없이 “족보 덕분에 학점을 잘 받았다”며 높은 별점이 매겨진다.

올해 대학교 4학년인 황모(24ㆍ여) 씨도 수강신청 때 가장 중요한 강의 선택 기준으로 ‘족보’를 꼽았다. 강의 평가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해 족보가 있는 수업만 고른 황 씨는 중간고사 기간에도 자격증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시험 직전 족보만 외우면 높은 학점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황 씨는 “마지막 학기라 족보가 있는 과목을 위주로 수강신청을 했다”며 “학교 시험 외에도 준비할 게 많아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강의평가는 학생들이 직접 조회하기 어려운데다 형식적인 내용으로 유명해 학생들은 사설 사이트나 자체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제공하는 강의 평가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일부 강의 평가 서비스는 이른바 ‘시험 족보’ 유무를 내세워 광고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 사설 강의 평가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추천 강의 리스트를 제공하며 ‘족보가 제공돼 높은 학점이 보장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 후기를 입력하는 학생들도 ‘쉬어가는 강의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등의 평가를 남겼다.

반대로 족보가 없고 시험이 까다로운 과목에는 ‘피해가야 할 과목’이란 딱지가 붙는다. 학점 부여 기준이 엄격하거나 과제가 많이 부여되는 과목도 여지없이 ‘기피 과목’으로 낙인 찍힌다. 이 때문에 일선 교수들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시험이 어렵고 공부량이 많으면 그만큼 교수도 준비를 했다는 의미”라며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막상 강의평가에는 피해야 할 강의라는 후기가 올라오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사립대학에서 문학 비평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도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사설 강의 평가 사이트에서 내 강의 별점이 가장 낮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다”며 “요즘 대학생들이 바쁘다는 건 알지만, 전공 공부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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