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청구 어렵고 지급명령 안 지키는 경우 대다수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1. 두살배기 아들을 홀로 키우는 김모(24) 씨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임신 7개월 때였다. 입덧은 커녕 배도 크게 불러오지 않아 늘 겪던 생리불순이라고 생각했다. 4년 넘게 만난 남자친구는 아이를 같이 키우자고 했다.
만삭 무렵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성인 8명이 이유없이 김 씨의 몸을 마구 때렸다. 폭행 직후 큰 진통이 찾아왔지만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 그때도 남자친구는 김 씨 곁에 있었다.
오랜 진통 끝에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지만 아이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친구는 출산 당일 연락이 끊겼다.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친 김 씨는 아이를 입양기관에 보냈다. 눈물로 밤을 지새던 김 씨는 결국 2주만에 아이를 데려왔다.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채 미혼모 시설에서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지하며 지냈다.
어느날 아이아빠의 친구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임신 당시 당했던 묻지마 폭행을 사실 아이아빠가 주도한 것이라고 실토했다. 아이아빠는 아이를 숨지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분유값, 기저귀값 등 돈 나갈 곳이 많지만 김 씨는 아이아빠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생각이 없다. 양육비를 청구하려면 아이아빠 연락처, 주소지,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양육비 청구가 가능해도 아이를 죽게 하려 했던 사람과는 말 한마디 나누고 싶지 않다”며 “아무리 힘들어서 내 힘으로 아이를 키울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 10년 전 한순간에 미혼모가 된 엄보미(31) 씨. 책임감을 보일 줄 알았던 아이아빠는 함께 키우자는 말 대신 낙태비를 입금시켰다. 그는 자신의 친자임이 확인되면 입양을 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엄 씨는 미혼모시설과 고시원을 전전하고 온갖 궂은 일을 하며 혼자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지출이 많아졌다. 그러다 지난해 미혼모도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엄 씨는 아이아빠의 연락처를 어렵게 찾아내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8월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회피하려는 아이아빠는 소송 절차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는 유전자검사도 5개월이 지난 지난 2월에서야 겨우 응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후 엄 씨는 아이아빠와 수없이 싸웠다. 기나긴 싸움 끝에 지난 10일 엄 씨는 과거 양육비 1800만원과 함께 매달 65만원의 양육비를 받기로 합의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소송 스트레스가 컸던 엄 씨는 하루 빨리 소송을 끝내고 싶었다. 마음 한구석엔 걱정도 앞선다. 엄 씨는 “소송은 끝났지만 아이아빠가 양육비를 제대로 보내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2015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육비 지급 판결 대상자 429명 가운데 약 45%가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거나 정기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 상대방과 연락이 끊긴 탓에 양육비 청구가 불가능하거나 양육비 지급 명령을 받은 상대방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경우였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3월~지난해 2월까지 양육비 지급 판결 이후 양육비가 실제로 지급된 것은 전체 2800여건 가운데 29.7%에 불과했다.
이행원이 감치명령 등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지급이행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양육비 확보가 쉽지 않다.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경제적 어려움이 큰 미혼모에겐 양육비가 절실하다”며 “양육비 소송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좀 더 강력한 강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육비 지급 거부자를 대상으로 재산압류, 출국금지 등 채무 불이행 수준의 제재를 받도록 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과거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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