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것은 지난 9년의 기록…노순택 개인전
라이프| 2017-06-05 11:59
아트선재센터, 6월 2일~8월 6일
독일 개인전 ‘비상국가Ⅰ’ 연장선
용산참사ㆍ천안함 등 사태 그늘 비춰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이것은 지난 9년의 기록이다. 미디어에서 다뤄졌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던 사건들이 사진으로 열거됐다. 용산참사,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강정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등 하나 같이 굵직한 사건들이나 너무나 첨예해 차라리 외면하고 팠던 기억들이 전시장에 소환됐다. 바로 사진작가 노순택의 작업이다. 작가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예술의 책무를 규정할 수는 없으나, 예술은 무책임함,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굳어진 우리의 감각과 인식에 금을 내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고 했다.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선정)는 6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노순택의 개인전 ‘비상국가 Ⅱ-제 4의 벽’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열린 개인전 ‘비상국가Ⅰ’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로 ‘비상국가’라는 문제의식을 끌고가되, 지난 10년사이 새롭게 벌어진 사태의 그늘을 비추는 신작 위주로 구성됐다. 

사진작가 노순택의 개인전 ‘비상국가 Ⅱ-제 4의 벽’가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선정)는 6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0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열린 개인전 ‘비상국가Ⅰ’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로 ‘비상국가’라는 문제의식을 끌고 가되, 지난 10년사이 새롭게 벌어진 사태의 그늘을 비추는 신작 위주로 구성됐다.
세월호 1주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유족에겐 물대포가 발사됐다. 노순택은 “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피눈물을 흘리는 유족, 물대포를 쏘는 국가…사방이 물이지만 지독한 ‘가뭄’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가뭄 Drought #CFF012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5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강정강점 Gangjeong Gangjeom #CBJ03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1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비상국가’는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의 개념이다. 문자 그대로 민족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태라기보다 국가가 처한 법적 헌법적 상황이 ‘비상’인 상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국가적 위기가 비상사태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처한 법적 헌법적 상황이 비상사태를 부르는 것”이라는게 한스 D크리스트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의 설명이다. 정전이후 한국의 상황은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겪고 있는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는 명제와도 유사하다. 분단체제라는 억압적 구조는 남북한의 시민에게 끝없는 비상사태 하의 삶을 강요하고, ‘오작동’하는 사례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섬에서 섬으로’, ‘섬에서 뭍으로’, ‘그러나 뭍에도 섬이있다’는 흐름으로 흘러간다. 제주ㆍ백령도ㆍ연평도 등 섬 인근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용산ㆍ광화문ㆍ밀양 등 뭍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뭍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로운 섬’들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시장 2~3층에서 각각의 ‘지형’을 이루며 전개된다.

노순택의 사진은 현장의 기록이자 사회적 저항의 의미를 담는다. 집회현장에서 충돌, 거리로 내몰린 이들의 절규가 생생하다. 작가는 “누가 보이는지, 누가 지나치게 노출됐는지, 누가 보이지 않는지, 숨었는지가 곧 권력관계와 연관된다” 며 “기록자와 운동가를 넘나드는 활동”이라고 했다. 비슷비슷한 사진들 사이엔 작은 차이들이 보인다. 집회에서 폴리스라인을 형성한 전투경찰들의 방패는 어느 순간 ‘법’이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2009년 용산 4구역의 풍경이다. 관객들은 반복된 사진 사이, 제복과 진압장비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남일당디자인올림픽 Namildang Design Olympic III #BJG05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09.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2010년 포격당한 연평도를 찾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이라는 ‘촌극’을 보였다. 노순택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보온병(포탄)을 찾으러 연평도를 뒤졌다. 포격당한 민가엔 꽃무늬 벽지가 환한데, 꽃이 아니라 총알맞은 벽으로 보인다. 잃어버린보온병을찾아서 In Search of Lost Thermos Bottles#CAL27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0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또한 현장사진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작업도 선보인다. 2015년 세월호 1주기에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발사된 캡사이신 물대포의 물줄기만을 촬영한 ‘가뭄’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그저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쯤으로 읽힌다. “물줄기의 변화무쌍한 모습만 프레임에 넣으니 폭포였다, 비바람이었다, 눈보라처럼 보였다.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 풍경”을 잡아낸 작가는 “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죽음에 피눈물 흘리는 가족, 물대포 쏘는 국가…온통이 물인데 저에겐 지독한 ‘가뭄’으로 보였다”고 했다. 주변의 상황을 배제하자 더 많은 주제들이 쏟아진 셈이다.

하나같이 치열한 사진들이나 미학적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크리스트 디렉터는 “노순택은 이미 국제적인 작가”라며 “그의 사진은 그 자체로 미학적인 언어를 갖고 있고, 각각의 이미지들은 미술적 관점에서 ‘물성’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적인 농담’(Good intellectual joke)을 통한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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