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정치권이 주도하는 개헌, 권력구조 넘어 기본권 담을 수 있나
뉴스종합| 2017-06-27 10:07
- 인권위, 기본권 보장 강화 헌법 개정안 공개
- 시민사회 “적극적 국가 역할 헌법에 담아야”
- 7월 말까지 국민 의견 수렴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촛불집회를 통해 권력의 교체를 이룬 역사적 경험이 향후 개헌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블랙리스트, 세월호 사고 등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극도로 침해한 지난 정부의 정치적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헌법에 기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정치권 주도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논의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26일 서울 저동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기본권 보장 강화 헌법 개정안 공개 토론회’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본권을 보다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규범으로서 헌법의 새 모습을 그리기 위해 진행됐다. 지난 1월부터 활동해온 ‘기본권 보장 강화 연구포럼’에서 만든 헌법 개정안 초안을 발표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새로운 헌법은 기본권을 수호하는 적극적 국가의 모습을 담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정치권이 주도하는 개헌 과정이 국가권력구조 외의 이슈를 모두 집어삼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지난 3월 11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축하하는 촛불집회 참여자들 [제공=연합뉴스]

연구 포럼의 위원장인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 논의가 촛불집회로 불타 오르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권력구조 등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우려되고 있다”며 “개헌이 논의된 마당에 인권위에서 기본권 보장 강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려고 포럼을 만들어 6개월간 활동한 결과가 이번에 제안된 개정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 모인 학자와 시민단체들은 헌법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기본권의 수호이며 국가권력구조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 공감대를 이뤘다.

개정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존 헌법 1조 1~2항에 더해 3항으로 “대한민국은 인권 국가를 지향하며,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해 행사된다”고 밝히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인권국가라는 게 얼핏 당연할 수 있지만 현행 헌법에선 10조에 가서야 관련 언급이 나온다”며 “인권국가를 1조에 넣어 국가권력구조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함으로써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무국적자 등도 국가의 인권 보호 책무의 대상에 포함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대두된 안전에 관한 권리 조항을 신설했고 차별을 금지하는 다양한 사유를 밝혀 적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적극적 권리로서 ▷기본소득 ▷사회보장제도를 고지받을 권리 ▷주거생활 안정 ▷최저임금제 ▷동물보호에 관한 내용 ▷지속가능발전원칙 등도 추가해 국가가 적극적인 사회보장 정책을 펼쳐야 하는 근거를 헌법에 명시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됐다.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형제 폐지 ▷공무원 단체 행동권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등도 과감히 포함했다. 정 위원장은 “인권위가 내는 안이라는 점에서 다소 진취적인 면이 있다”면서도 “4차산업 혁명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기로에 있는 만큼 새 시대를 여는 인권 조항이 돼야 한다”며 그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기본권 보장 강화를 위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헌법 개정 과정이 이같은 논의의 결과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특히 6월 지방자치선거에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겠다는 로드맵에 대해 촉박한 시간으로 범국민적 토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개정은 모든 국가 이슈를 흡수하는 블랙홀이다. 과연 개헌이 제대로 그 의미를 살리며 이뤄질지 의문 부호를 다는 사람도 많다”고 우려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권력 구조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만이 정치적 쟁점이 된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촛불시민혁명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 개헌 과정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7월 31일까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정상환 인권위 상임위원은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 인권위 최종안을 만들고 이를 정치권에 제안하는 형태로 인권위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기본권에 관한 내용이 폭넓게 반영하는 데 인권위가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why3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