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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연의 외교탐구] “정보 역량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뉴스종합| 2017-09-05 10:38
-<박종재 한양대 인텔리전스학과 특임교수 인터뷰>

정부의 정보 역량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보’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서 미래를 보는 창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보기관이 소기의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보 실패’는 정부의 안보정책 실패는 물론이고 국가의 안위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치명적 정보실패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회복하기 어려운 안보위기를 맞을 수 있다.

얼마 전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를 두고 청와대는 방사포라고 발표했다가 단거리미사일로 수정했다. 3일에는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 규모가 논란이 됐다. 우리 기상청은 북한의 인공지진 규모를 5.7, 미국 지질조사국(USGS)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의 기상청은 6.3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나 정보기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북한의 도발 능력을 가능한 낮게 평가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보기관이 정치적 판단을 내리면 그만큼 국민의 신뢰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정부정책은 실패로 귀결된다. 최근 국가들 간 정보의 각축전을 다룬 ‘정보전쟁’을 펴낸 한양대 글로벌인텔리전스학과 박종재 특임교수는 위기 상황일수록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정책결정권자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4~2007년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실 및 안보정보비서관실 등에서 근무하고, 군사ㆍ외교ㆍ정보 영역 업무를 두루 경험한 박 교수에게 위기의 순간 정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물었다.



-‘정보전쟁’이라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우리는 정보기관의 활동이 정치적 논란에 종종 휩싸여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이 홍역을 치룬 아픈 역사를 되풀이해 오고 있다. 정보역량이 계속 발전돼도 부족할 판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원과 조직이 물갈이되고 있는 것이다. 분단이란 현실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에게 정보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관심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가정보는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 미래를 위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정보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우리는 종종 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렵다. 정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 이것을 오해가 없도록 설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근현대 전쟁 속에서 정보가 성공적으로 활용되거나 잘 못 활용되었던 사례들을 통해 정보가 국가의 흥망성쇠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정보기관이 정파적 이해관계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계속 발전되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책에서 강조한 정보실패의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모든 안보정책의 실패에는 크고 작은 정보 실패가 선행된다. 안보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보가 소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 실패가 야기되는 원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정보기관의 역량 부족이나 기관 간의 협력 부족으로 인해 야기되는 경우가 있고, 정보사용자가 정보를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적의 기만에 속아 잘못된 정보판단으로 부지불식간에 이끌려간 경우가 있다. 이 중에서 평상시에는 앞의 두 가지 사례로 인한 정보실패가 주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는 9.11테러 직전 미국 정보기관들이 서로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다 테러를 예방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고, 2003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사례도 대표적 정보실패에 해당된다.

그런데 정보를 활용하는 시점에서는 정책의 성공이나 실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보 사용자들이 주관적 관점에 따라 정보를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지가 크다. 다시 말해 되도록이면 정치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활용하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사용하는 고위 정책결정자는 물론이고 정보기관 간부들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안보와 국익이라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정보를 생산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책에서 소개했지만 위기 시 정보기관의 바람직한 정보활동 사례로는 1967년 제 3차 중동 전쟁에서 보여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활동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파적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양질의 정보를 신속하고 적시적으로 전쟁 지휘부에 보고함으로써 아랍 연합군을 물리치고 전쟁을 6일 만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활동은 국민들로부터 정보기관이‘국가 생존을 위한 첨병’이라는 신뢰와 지지를 받는 계기가 되도록 했고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밑거름이 되었다.

-정보의 정치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보기관의 활동은 국회의 통제나 언론의 감시 등 제도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을 존중하면서 정파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국민의 신뢰 없이는 정보기관 발전은 물론이고 정부 자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현재 우리 입장에서는 정보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본연의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국정원이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이 제대로, 그리고 가능한 빨리 매듭지어져 정보기관이 다시는 정치적 시비에 휘말려들지 않고 본연의 역할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국정원 개혁 이후 정보기관의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 우리의 정보역량을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려고 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사실은 정보역량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의 정보지원을 당연하게 받아 왔지만 이제는 완전히 독립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보다 자주적인 정보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정보의 세계에서 완전한 우방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정찰위성 도입 사업인‘425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적에 대한 정찰·감시능력을 갖추지 못한 국방ㆍ방위력은 의미가 없고, 아무리 펀치가 세도 보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적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CIA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코리아 미션센터를 설립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적국에 대한 정보활동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것 이외에도 정보활동을 통해 현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려는 적극적 활동들이 포함된다. CIA에서 하는 활동을 예로 들면, 비밀공작이라는 것이 있고 또 다른 한 가지로는 준군사공작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와는 입장이 다르지만, 미국은 냉전 이후에도 비밀공작이나 준군사공작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을 제 1의 옵션, 군사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제 2의 옵션, 정보기관이 비밀공작이나 준군사공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제 3의 옵션이라고 부른다. CIA가 코리아미션센터를 설립했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정보활동에서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고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데 정보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코리아 미션센터가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 그것을 판단할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구체적 정보도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폼페오 CIA 부장이 소극적 정보 보좌에만 안주하기 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집행을 정보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전 국내 언론에 코리아미션센터 설립 사실이 보도될 당시 주한 미군의 501정보여단에 특수임무팀이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501 정보여단은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을 수행할 목표에 대한 정보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특수임무부대가 수립된다는 것은 유사시 준군사공작과 같은 공세적 대북 정보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501정보여단의 활동은 CIA의 코리아 미션센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이루어질 것으로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언론과 같은 오픈소스도 국가의 정보활동에 활용이 되는가?

= 정보의 출처는 크게 인간정보 활동인 Humint, 통신이나 여러 기술적 방식을 사용하는 Techint, 공개정보를 활용하는 Osint로 구분되는데,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공개정보의 중요성은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공개정보도 국가의 정보역량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인 것이다. 하지만 공개정보가 국가정보의 영역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해 검증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참으로 가장한 거짓 정보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언론도 사실을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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