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법원 “경찰이 무시한 염전 노예 피해자에 국가가 배상해야”
뉴스종합| 2017-09-08 16:02
-도움요청 경찰이 외면…국가 3000만원 배상 판결
-다른 피해자 7명은 ‘증거 부족’ 패소

[헤럴드경제=이유정 기자]염전에 감금된 채 폭행과 강제 노역을 당한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 일부에게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 김한성)는 8일 박모씨 등 염전노예 피해자 8명이 정부와 신안군·완도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박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나머지 피해자들의 청구는 국가의 책임을 물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박씨는 염전을 몰래 빠져나와 인근 파출소 경찰 공무원에게 염주로부터 위법부당한 대우를 받았단 취지로 얘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며 “그럼에도 경찰 공무원은 이를 무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위법이 있음이 증명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섬에서 가족 친인척 없이 생활한 박씨가 도움을 요청할 상대방은 현실적으로 경찰 공무원밖에 없었다”며 “박씨가 염전을 몰래 빠져나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경찰관은 지적장애가 있는 박씨를 보호하고 염주(염전 주인)의 위법한 행위를 조사하긴커녕 오히려 염주를 파출소로 부르고 자신은 자리를 떠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씨와 염주가 단 둘이 있도록 함으로써 결국 박씨가 염전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당시 그가 느꼈을 당혹감과 좌절감이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박씨가 청구한 위자료 액수를 모두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함께 소송에 참여했던 강모씨 등 피해자 7명의 배상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염전에서 지적장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키고 폭행·감금 등의 위법행위를 한 사실은 형사판결 등으로 인정된다”면서도 “강씨 등은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위법한 공무집행이 있었다는 구체적인 주장이 없거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원고 측 주장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는 선착장으로 도망갔으나 선착장에서 그에게 표를 팔지 않아 다시 염전으로 잡혀온 경우, 장애인 등록신청을 했지만 해당 사회복지공무원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지 사회보장급여를 받지 못한 경우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전 노예 사건은 지난 2014년 1월 전남 신안군 신의도 염전에 감금돼 혹사당하던 장애인 김모씨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구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밝혀진 피해자는 63명에 이르며 대부분이 5~10년의 오랜 기간 동안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지난 2015년 11월 “국가가 무임금 노동, 상습폭행 등 장애인 학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다”며 2억 4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날 판결 직후 원고 측 법률 대리인단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판결”이라며 “일반적인 손해배상 소송과는 달리 장기간 동안 염전노예로 피해를 당한 분들의 입증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소송 과정에서 국가가 갖고 있는 자료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제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적 장애인들이 경찰서에 가서 보호를 요청했을 때 경찰관이 이를 무시하지 말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부 의의를 가진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kul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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