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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먼 대한민국] 인천공항 체류 7개월…아마드 씨의 끝나지 않은 난민인정기
뉴스종합| 2017-09-13 10:56
-난민 인정 심사 기회 받지 못해 소송 시작
-승소한 뒤 ‘인도적 체류 자격’ 얻어 국내 머물러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지난해 7월 4일, 아마드(가명) 씨는 인천공항 정문을 나섰다. 공항에 발이 묶였던 7개월의 구금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1년 간은 ‘인도적 체류자’의 이름으로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법무부는 난민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임시 체류 자격인 인도적 체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아마드 씨가 고향 시리아를 떠난 건 지난 2015년 12월 11일이었다. 고국은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다. 레바논, 터키, 카타르를 거쳐 사흘을 꼬박 비행한 끝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후 공항 출입국관리소에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다. ‘살던 마을이 반군에 포위됐습니다.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 군복무를 해야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출입국 관리소에 이렇게 소명했다. 

인천국제공항에 위치한 송환대기실 정문 모습 [출처=법무부 정책블로그]

사흘 뒤 아마드 씨는 뜻밖의 장벽에 부딪혔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장은 그를 난민 인정심사에 넘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심사를 받을 수 없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마드 씨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송환대기실이라 불리는 공항 안의 출국대기실에 머무르기로 했다.

송환대기실은 인천공항 출입국장 2층에 있는 470㎡ 남짓한 공간이었다. 창문이 없어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형광등을 켤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난민 수십여명이 나무 평상에 누워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점심식사인 치킨버거와 콜라를 먹는 사람도 있었다. 칼이나 포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제공되는 터라 거의 매끼니 버거와 콜라가 지급된다고 했다. 샤워는 저녁 9시 이전까지 마쳐야했다. 비누나 양치도구가 일절 지급되지 않아 난민들은 변호사를 통해 받은 개인 세면도구를 사용했다.

사실상 열악한 구금상태였지만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현행 난민법과 출입국관리법은 난민신청 혹은 심사 중인 외국인만 정부가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입국이 허가되지 않은 외국인을 돌려보내는 의무는 항공사의 몫이다. 송환대기실의 관리주체도 항공사운영협의회(AOC)로 정해져있었다. 항공사 측이 예산 문제로 송환대기실 안의 난민들에게 식사를 주지 않더라도, 정부가 이를 제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금기간이 길어지자 아마드 씨는 변호사를 수소문해 법정 싸움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2월 인천공항 출입국 관리소장을 상대로 ‘난민 심사 기회를 주지 않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출입국 관리소의 처분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이같은 처분을 내린 이유도 듣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인천지법 행정1부(부장 임민성)는 지난해 6월 아마드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출입국항에서 난민인정신청자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외국인은 바로 국외로 송환될 처지에 놓인다”며 “처분서를 통해 처분의 내용과 이유를 제시하고 불복절차를 안내할 필요성이 높다”고 판결했다. 이어 “시리아의 내전상황에 비춰보면 강제징집거부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 평가될 여지가 전혀 없다거나 이로 인해 박해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며 난민인정심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원 판결이 나오자 법무부의 후속 조치도 이뤄졌다. 법무부는 아마드 씨와 송환대기실에 체류하던 시리아인 26명에 대해 입국을 허가했다. 아마드 씨는 1년 간은 ‘인도적 체류자’ 지위로 한국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 체류 자격을 1년마다 갱신해야 했다. 취업 허가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의료보험 등의 혜택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아마드 씨는 합법적으로 ‘난민’으로 머물기 위해 법원에 난민 인정소송을 내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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