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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현수막과의 전쟁①] “불법 현수막 꼼짝마”…공포의 ‘흰색 트럭’이 떴다
뉴스종합| 2017-09-20 08:27
-서울시 불법광고물기동정비단 따라가보니
-불법 현수막, 단속 피하려고 온갖 수 쓰지만
-완전무장 정비단에 걸리기만 하면 ‘싹둑’
-정비단 “1년 만에 불법 현수막 70% 줄여”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이거 보세요. 단속 한번 피해보겠다고 얼마나 높은 곳에 매다는지….”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문정동 건영아파트사거리에 있는 한 전봇대 앞. 김종효(62) 서울시 불법광고물기동정비반장은 얼추 봐도 4m 이상 높이에 걸린 불법 현수막을 가리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트럭으로 향하더니 짐칸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이런 ‘꼼수’를 처단하기 위해 정비단이 낚시대를 개조해서 만든, 최대 3.5m까지 늘어나는 전지가위였다. 능숙한 손놀림에 불법 현수막은 힘없이 떨어졌다. 김 반장은 “죄어오는 단속망을 피하려고 온갖 수를 다 쓰지만, 그래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며 “우리 눈에 걸린 이상 얄짤 없다”고 자신했다.

서울시 불법광고물기동정비반이 횡단보도 앞에 걸려있는 불법 현수막을 제거하고 있다.
서울시 불법광고물기동정비반이 떼어낸 불법 현수막을 정리하고 있다.
서울시 불법광고물기동정비반이 운행하는 흰색 트럭 짐칸 모습. 하루종일 제거한 불법 현수막이 가득 쌓여있다.

공포의 ‘흰색 트럭’이 떴다. 하루종일 서울 곳곳을 누비면서 불법 현수막만 싹둑 잘라내는 불법광고물기동정비단이 운전하는 차량이다. 우후죽순 개최되는 행사들로 불법 현수막도 성행하는 가을, 3명의 정비반과 함께 그 현장을 돌아봤다.

법상 관할 자치구의 허락없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게시대가 아닌 전봇대 등에 내건 현수막은 불법으로, 모두 제거 대상이다. 도시미관을 저해하며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위험이 있어서다.

이 날 사람 발걸음이 많은 사거리와 지하철역 일대에선 예외 없이 불법 현수막이 펄럭였다. 한 시간여 만에 떼낸 게 모두 22개로, 2분30초당 1개를 잘라낸 셈이다. 한번 순찰하면 기본 80~100개에 많을 때는 하루에만 170개를 없애기도 한다는 게 정비반의 설명이다.

요즘엔 단속을 피하는 기술도 진화했다. 손이 닿지 않는 4~5m 높이에 현수막을 걸고 늦은 밤과 새벽, 주말에만 걸다 떼버리는 ‘게릴라’도 선보인다.

이 날도 지하철 8호선 문정역 부근에서 게릴라 현수막의 흔적이 발견됐다. 단속 차량이 오기 전에 급박하게 떼어낸 듯 했다. 미처 갖고 가지 못한 10여개 불법 현수막이 펄럭였다. 동행한 한 단속원은 “얼마나 많이 떼고 붙였으면 이렇게 낡았겠느냐”며 “오늘 이 업체는 100만원 남짓 손해를 본 것”이라고 했다. 대로변에 있는 가로 5m 현수막의 제작비는 10만~12만원선이다.

저쪽이 뛰면 이쪽은 나는 법. 김 반장은 “직접 만든 가위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트럭 위를 올라가든, 전봇대를 타든 어떻게든 제거한다”며 “게릴라를 막기 위한 새벽, 주말 불시단속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반장은 “전체 7명 직원들이 여름 휴가도 못 가고 단속에 몰두한 결과, 불과 1년여 만에 도심 속 불법 현수막이 70%는 줄었다고 보면 된다”고 자신했다.

정비단의 최대 난제는 민원이다. 특히 정당ㆍ공공기관 등이 직접 내건 불법 현수막을 제거할 때는 빗발치는 민원을 각오한다. 김 반장은 “단속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불법 행위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이 가운데 십중팔구는 외려 잘라내면 왜 없앴느냐고 ‘전화 폭탄’을 퍼붓는다”고 했다.

이 날 단속 중 길을 지나던 시민들 몇몇은 고생이 많다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자영업자 이영석(45) 씨는 “최근 불법 현수막이 눈에 띄게 준 건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며 “도시를 가꿔가는 숨은 일꾼”이라고 치켜세웠다.

정비반의 일은 온종일 떼낸 불법 현수막을 관할 자치구 안 담당부서 창고로 넘길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자치구는 이를 받아 갯수ㆍ크기 등에 따라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책정하고, 특정기간 찾아가지 않을 때에는 소각 또는 재활용 처리한다.

김 반장은 “일은 고되지만, 우리 덕에 서울의 인상이 하루하루 달라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며 “이해관계 없이 오직 현행 법만 기준삼아 도심 미관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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