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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패’를 민간기업에 따지는 국정감사…정무위 증인만 160명
뉴스종합| 2017-09-21 10:23
-현대차, KT 등 대기업 총수 줄줄이 출석 요구
-온종일 앉아있다 ‘네’ㆍ‘아니요’만 하다 퇴장
-민간기업 경영 간섭에 ‘정책 실패’ 책임 전가


[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번째 국정감사가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국회가 대기업 총수를 겨냥한 ‘묻지마 증인’ 신청을 예고하면서 구태(舊態) 국감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특정 그룹의 총수를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자체를 자신의 ‘파워(권력)’로 공공연하게 자랑하기도 한다. 국정감사가 원래 취지인 정부의 정책 점검은 오간데 없고 ‘기업인 망신주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전날 여야 간사협의를 통해 올해 국정감사에서 각 당별 증인 신청 한도를 40명으로 합의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100명, 자유한국당은 140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무조정실 등 소관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도 포함된다. 각 당이 40명으로 줄이더라도 산술적으로 정무위에서만 160명의 증인을 출석시킬 수 있다. 사실상 국내 주요 기업 총수와 임원들이 잠재적 증인인 셈이다. 정무위 관계자는 “여야 간사간 1차 협의 결과로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면서 “오는 28일까지 추가 협의해 증인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별 의원들은 앞다퉈 신청 증인을 공개하면서 ‘기선 제압’에 나섰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대ㆍ기아자동차가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를 차별했다”면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도 증인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삼성그룹과 KT, 다음카카오, NC소프트, 국민은행, 현대차그룹, 네이버,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사명이 적힌 국감 증인 명단을 공개했다. 대부분 회장이나 대표, 사장의 출석을 요구하는 셈이다. 앞서 정무위는 46개 기업ㆍ금융회사의 총수와 대표, 사장 등 57명의 이름이 적힌 증인 명단 초안을 작성하다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문제는 정부나 공기업 정책의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국정감사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하고 책임을 전가한다는 데 있다. 국가 정책을 위반하거나 따르지 않은 민간기업에 대해선 관계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데도 굳이 기업인을 불러 ‘여론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A의원실 관계자는 “민간기업의 잘못을 따지려면 관련 정부부처를 대상으로 관리ㆍ감독의 실패를 묻는 게 맞다”면서 “다만 해당 기업에 직접 추궁함으로써 책임감을 배가시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대기업 총수나 회장의 출석을 요구하는 것도 공개적으로 ‘망신주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수나 회장이 계열사의 개별 사안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고, 실제 국정감사에서도 실무적인 답변은 담당 임원들이 대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거 국정감사에 회장이 출석한 A회사 관계자는 “하루종일 앉아있다 몇 마디 대답만하고 퇴장했다”면서 “TV에는 병풍처럼 나왔다. 왜 증인으로 불려갔는지 모르겠다”고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일부 의원들은 후원금이 필요하거나 민원 해결을 부탁하기 위해 국정감사를 ‘기업 길들이기’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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