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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폭탄’에서 ‘행동’으로…北ㆍ美, ‘홉스의 덫’에 빠질까
뉴스종합| 2017-09-26 10:07
-‘치킨게임’에서 ‘홉스의 덫’으로 치닫는 北ㆍ美 갈등
-리용호 “美 폭격기 영공 안넘어도 떨굴 자위적 권리 보유”
-美 “北 도발행위 중단 않으면 모든 옵션 대통령에게 보고”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북한과 미국 간 말폭탄 대결이 격해지면서 갈등양상은 ‘치킨게임’을 넘어 실제적 무력충돌로 치닫는 ‘홉스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자극적 말과 행동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위협이 고조되면서 외교적 해법이 끼어들 여지는 줄어들고, 오판에 의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동원한 미국의 무력시위가 전개된 후 북미갈등이 홉스의 덫에 빠지려고 하고 있다. ‘홉스의 덫’은 잠재적 적대국가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최고조에 달할 때 ‘최상의 수비는 최상의 공격’이라는 논리로 국가가 공격에 나서는 상황을 의미한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대북 선전포고’였다며 미 전략폭격기가 영공을 넘지 않더라도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미 전략자산에 대한 군사행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가운데)이 25일(현지시간) 오전 숙소인 뉴욕 유엔본부 앞 밀레니엄 힐튼 유엔플라자를 나서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날 출국 전 숙소인 호텔 앞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면서 앞으로 미국 전략폭격기가 북한 영공을 침범하지 않아도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했다.[사진=AFP연합]

실제 북한은 지난 1969년과 1994년 자위권을 이유로 미국 정찰헬기를 격추시킨 바 있다. 지난 1969년 북한군은 북한 청진 남동쪽 약 90마일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던 주일미군의 EC121기를 격추했다. 이 공격으로 승무원 31명이 전원사망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술핵 공격 등 25개의 행동계획이 포함된 긴급계획(Contingency Plan)을 수립했지만, 미국은 무력시위외에 다른 응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994년에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 부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의 정찰헬기를 격추시켜 조종사 데이비드 하일먼 준위가 사망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상 북한이 자위권을 근거로 미 군무기에 공격을 가한다면 상황을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돌발적 트위터나 기자와의 문답도 아닌, 준비된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B-1B랜서를 북방한계선(NLL)를 넘어 북쪽 국제공역에 투입함으로써 그동안 발언했던 ‘군사옵션’이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워싱턴 D.C.의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피하길 바라지만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위협을 완전히 해결할 4~5가지 시나리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는 다른 해결책보다 더 험악하다”며 공세적 방안을 취할 뜻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도발을 시도하면 북미 간 무력시위는 일촉즉발의 악순환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달 10일 노동당 창건일을 계기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이나 추가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하고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군의 B-1B 단독훈련은 북한에게 ‘괌포위사격’의 명분을 제시했다”며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에서부터 북극성-3형 등 각종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또 “북한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이 직접 강경대응을 공언했다”며 “추가도발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북미간 갈등수위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강 장관은 이날 워싱턴 D.C.에서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우발적 군사충돌로 상황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지 않도록 한국과 미국이 빈틈없고(astuteness) 일관성 있게(steadfastness) 위기관리를 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 장관은 “한반도 전쟁의 결과는 한국에도 국제사회에도 참혹할 것”이라며 “지난 70년 간의 노력 끝에 민주주의와 경제자유주의 성공모델 국가로 부상한 우리나라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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