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생활 속 측정표준을 알자]암행어사가 들고 다닌 ‘유척’의 정체는?
뉴스종합| 2017-10-03 09:01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왕의 특명을 받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비렁뱅이나 나그네처럼 변장하고 지방에 몰래 파견되었던 조선시대의 암행어사. 암행어사 하면 지방의 탐관오리를 적발하고 동헌에 쳐들어 갈 때 “암행어사 출두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손 쉽게 떠오른다.

이 때 암행어사는 마패를 손에 쥐고 등장한다. 마패는 한자어, 馬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암행어사는 이 마패만 보여주면 어디서든 역졸과 역마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녔던 건 마패 뿐만이 아니었다.

왕이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하사하는 것은 모두 네 가지 로 봉서(封書)와 사목(事目), 마패, 유척(鍮尺)이다. 봉서는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음을 알리는 문서이고, 사목은 암행어사의 직무를 규정한 책이다. 그렇다면 유척은 무엇일까?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녔던 유척. [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 조선시대 도량형 제도에서 일종의 표준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은 박연을 시켜 아악을 정리하면서 악기의 기본음을 내는 황종률관을 만들고, 이것을 기준으로 황종척이라는 자를 만들었다. 이 황종척이 모태가 돼서 탄생한 자가 바로 유척이다. 그런데 암행어사는 왜 이런 자를 가지고 다녔을까?

당시 지방 수령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백성들로부터 각종 세 를 거둬 조정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세금은 오늘날처럼 화폐로 거두어들이지 않고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곡식, 옷감, 지역 특산품과 같은 물품으로 바쳐졌다.

이 때 중요한 건 지방 수령이 사용하는 자가 과연 정확한지의 여부였다. 지방 수령이 몰래 빼돌리려고 자의 눈금을 늘인다면 백성은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세를 부담해야 하므로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조정 입장에서도 그 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왕은 암행어사에게 유척을 하사하면서 지방 관청의 도량형을 확인하도록 했다. 유척은 지방관청의 도량형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별하는 표준자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유척은 세금 징수에 관한 목적 외에 형벌에 사용하는 도구의 크기가 규정에 맞는지 알아보는 용도로도 쓰였다.

[도움말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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