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경제광장-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때때로 방향키를 잡아야 한다
뉴스종합| 2017-11-09 11:20
얼마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만든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당시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에서 고민하던 인조가 항복을 하게되는 결정적 계기중의 하나가 쌍령전투의 패배이다.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를 구원하러 각 지방에서 근왕병 수만명이 모여들었고, 경기도 광주인근 쌍령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청나라 기마병 300여명에게 궤멸됐다.

쌍령전투의 패배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당시 조선군의 편제가 지나치게 조총중심으로 쏠린데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조총의 위력을 실감한 조선은 이후 조총병을 크게 확대했다. 그렇지만 당시의 조총은 장전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확도가 떨어지며 화약보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궁병과 창병 등을 적정한 비율로 함께 편제해서 상호 보완관계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총병에 집중한 까닭에 기마병의 돌격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금융시장에는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이는 경기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현금,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융시장의 현실에선 쌍령전투와 마찬가지로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30여개 종합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단기 외화자금을 차입한 것이 도화선이었다. 단기 외화차입금 규모가 1991년 112억달러에서 1996년 703억달러로 급증했고 결국 만기불일치와 환율리스크로 인해 금융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168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도 카드사들이 가계 신용대출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하고 외형경쟁을 벌인 결과이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금액이 1998년 24.2조원에서 2002년 357.5조원으로 급팽창했고 그 결과 우리 사회에 400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2011년부터 31개 저축은행이 연속으로 영업정지가 되면서 27조원의 예금보험기금이 투입된 ‘저축은행 사태’ 역시 비슷했다. 저축은행들이 부동산경기에 편승해서 부동산 PF대출을 2005년 5.6조원에서 2010년 12.3조원으로 확대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맞았다.

2017년 우리 경제는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골몰하고 있다. 시중자금이 가계부채로 지나치게 쏠려있는 까닭에 금리변동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지난 10월말 “가계부채 종합대책”에서 발표한대로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향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인상 등이 가시화되는 경우 일부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채무상환 부담이 가중될 것이 염려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또 다른 금융자산 쏠림현상이 나타날지 모른다. 금융기관의 자율성 보장은 꼭 필요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그 정도가 지나치면 의도치 않은 쏠림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자율과 규제를 흑백논리로만 볼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합리적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전체적인 추세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저해할 가능성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적기에 이를 컨트롤해 나가야 한다.

금융시장이라는 대양을 항해할 때 바람과 파도의 흐름에 배를 자연스레 맡겨 두다가도 시시때때로 배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방향키를 적절히 잡아줘야 안전한 항해가 가능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랭킹뉴스